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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품는 나무처럼…사랑 품을래요

입력 | 2005-04-16 03:11:00

학교폭력 등으로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고교생들이 13일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원예치료’를 받고 있다. 둥글게 손을 잡고 하늘을 보며 푸른 자연을 느끼는 참가자들. 포천=권주훈 기자 kjh@donga.com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13일 오후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 눈을 감은 채 서로 양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만든 14명의 목소리가 조용한 숲 속에 울려 퍼진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입을 열지 않던 학생들도 옆의 친구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하나 둘 “나는 소중하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학교폭력, 절도 등으로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고교생.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의 프로그램에 따라 기존의 봉사활동, 병영체험학습 등의 교육 대신 ‘원예치료’라는 새로운 교육을 받았다.

▽수목원에서의 원예치료=“보호관찰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봉사활동만 할 줄 알았죠. 그런데 첫날 나를 닮은 잔디인형을 만들었어요. 무언가를 소중히 가꾸고 돌보는 일이 처음이에요. 나보다 약한 존재라서 내가 지켜줘야 할 것 같았어요. 어느 순간 내가 괴롭힌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선호(가명·18) 군을 포함한 13명의 남학생과 1명의 여학생은 40시간의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11∼15일 전문 원예치료사에게 ‘자기 나무 심기’ ‘잔디인형 만들기’ ‘꽃병 만들기’ ‘수목원 방문’ 등의 교육을 받았다.

수목원에서의 ‘녹색수업’ 시간. 야외로 나온 것이 신나는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나무의 종류와 습성에 대해 설명해 주는 강사의 설명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전날 만든 잔디인형을 보여주면서 “나랑 닮지 않았느냐”며 넌지시 자랑하는 정진우(가명·19) 씨는 “그냥 시간만 채우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 무엇보다 식물을 기르는 수업을 받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예활동을 통해 심신을 치료하고 정서적 안정을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원예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배수연(裵秀娟) 원예치료사는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며 “훈계조의 강의보다는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원예치료가 이들에게 필요한 자기존중이나 분노 조절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해지는 보호관찰 프로그램=1989년 소년범에 대해 처음으로 실시한 보호관찰제도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보호관찰관의 지도 아래 일정기간 교육을 받게 하거나 무보수 봉사활동을 하게 하는 것.

아직까지는 지역봉사단체와 연계한 봉사활동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 인천보호관찰소의 원예치료도 이러한 시도의 일환.

서울보호관찰소에서는 대학생이나 일반인 중 역할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일대일로 연결해 상담을 하는 ‘멘터 프로그램’, 청소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하고 있는 ‘집단미술치료를 이용한 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청주보호관찰소에서는 지역 내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인파워먼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들이 또래에 비해 의지가 약하거나 자아존중감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을 자각하게 해주고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인천보호관찰소 성의찬(成義贊) 계장은 “강의식 교육이나 봉사활동 외에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면서 효과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돼야 이들의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포천=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