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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교황은 누구…콘클라베 18일 첫 회의

입력 | 2005-04-18 18:48:00



《‘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로마 가톨릭의 비밀 추기경회의인 콘클라베(conclave)가 18일 오후 4시 30분(한국 시간 오후 11시 30분) 시작됐다. 이날 콘클라베가 시작되면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은 모든 문이 굳게 닫힌 채 침묵의 장막에 감싸였다. 앞으로 이르면 3일 내에, 늦어도 다음 달 1일에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 교황이 탄생한다.》

▽미사=추기경들은 콘클라베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사에 참석해 “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미사를 집전한 유력한 교황 후보인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파벌과 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념, 자유주의, 무신론, 불가지론(不可知論), 상대주의 등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무엇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自我)와 욕망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상대주의의 독재로 다가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황 선출의 역사=교황 선출 방식은 ‘인간’이 갖는 태생적 불완전함을 보완하면서 합리적 선거 방법을 모색해 온 역사였다.

3세기까지만 해도 로마 주교인 교황은 다른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지방 성직자와 신자들에 의해 선출됐다. 그러나 4세기 이후 황제의 선거 개입, 교황직 매매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자 니콜라오 2세는 1059년 선거인단을 추기경에 한정하고 외부 개입을 배제하는 교황령을 선포했다.

교황 선거에 참석자 ‘3분의 2 이상’이라는 득표규정이 도입된 때는 1179년. 하지만 이 규정은 선거의 지연과 교황 공백의 장기화를 초래했다.

이에 새롭게 추가된 요소가 콘클라베. 라틴어로 ‘열쇠를 가지고’라는 뜻의 이 말은 1268∼1271년 3년 가까이 교황 선출이 지연되면서 유래됐다. 당시 시민들은 선거 장소를 잠근 뒤 빵과 물만 공급해 빠른 결정을 촉구했다.

그레고리오 10세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추기경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나오지 못하도록 1274년 제도화했다. 그 뒤 80세를 넘은 추기경을 투표에서 배제하는 등 선거법은 계속 보완됐다.

▽최근의 콘클라베 변화=지난 한 세기 동안 콘클라베는 가톨릭 200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유럽인만의 교황은 이 시기에 비로소 세계인의 교황으로 변화했다.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1900년부터 최근까지 선출된 교황은 8명. 뉴욕타임스는 18일 인터넷판에서 이번 교황 선거를 포함해 9차례의 콘클라베가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했다. 1903년 20세기의 첫 교황 비오 10세를 뽑은 콘클라베에는 62명의 추기경이 참가했다. 출신 지역별로 보면 북미 1명을 빼곤 모두 유럽이었다. 이 추세는 20세기 전반부 동안 이어졌다.

1958년 요한 23세를 뽑은 콘클라베에서 탈(脫)유럽 추세가 뚜렷해졌다. 당시 추기경 51명 가운데 유럽인은 64%에 머물렀다.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콘클라베는 유럽인 추기경 비율이 절반으로, 이 중 이탈리아인은 23%로 떨어졌다. 이번의 경우 이탈리아 출신은 17%에 머물렀다.


20세기 이후 콘클라베 현황(단위:%)콘클라베개최시기1903년7월1914년8월1922년2월1939년3월1958년10월1963년6월1978년8월1978년10월2005년4월선출된 교황비오10세베네딕트15세비오11세비오12세요한23세바오로6세요한 바오로 1세요한 바오로 2세?투표횟수4일7회3일10회5일14회2일3회4일11회3일6회2일4회3일8회?

추기경비율유럽(이탈리아 포함)9896100896469505050이탈리아615457563336232317북아메리카22

 689101112남아메리카

 2

 31814171718아시아

 

 

 266779아프리카

 

 

 

 2112119오세아니아

 

 

 

 21442자료:뉴욕타임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