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이 21일 합의한 ‘출산 여성에 대한 임금 및 휴가비 지급 개선안’은 최근 국가적 당면과제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예산 집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재원 문제를 고용보험에만 떠넘기려 한 것은 ‘묻지마 복지정책’의 상징적 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고용보험 재정 괜찮을까=개선안은 산(産) 전후 휴가 기간 90일 동안 받는 급여를 전액 고용보험과 일반회계 등에서 받도록 했으며 임신 4∼7개월에 유·사산을 겪으면 최대 45일간 고용보험에서 비용을 지원받아 휴가를 갈 수 있게 했다. ‘개선’에 따른 비용 부담을 대부분 고용보험이 떠안게 된 것이다.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고용안정사업, 능력개발사업 등 3개 계정으로 나뉘어져 따로 관리된다. 이 중 실업급여에 해당하는 부분만 근로자와 고용주가 월정급여의 0.5%씩 부담하며 나머지는 고용주만 부담한다.
산 전후 급여는 실업급여 부문에서 맡는다. 현재 30일분만 국가에서 부담하는데도 신청자가 2년 새 2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416억 원이 지출됐다.
개선안에 따라 300인 이하 사업장의 여성 근로자에게 산 전후 급여가 지급되는 2006년부터는 1100억 원, 대기업으로 확대되는 2008년부터는 약 2000억 원으로 지출 부담이 늘 것이라는 게 당정의 추산이다.
노동부 실무 관계자는 “실업급여는 현재 상황만 따져 봐도 수입과 지출이 연간 2조3000억∼2조4000억 원 선으로 거의 같지만 2007년부터는 지출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연간 1000억∼2000억 원씩 적자가 나면 3∼4년 내 조(兆) 단위로 늘 가능성도 있어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부 고용평등국 양승주(梁承周) 국장은 “실업급여 부문에 앞으로 적자요인이 있긴 하지만 산 전후 급여 지출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2008년부터 일반회계는 물론 건강보험에서도 지원금이 나올 계획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반회계에서 고용보험에 할당된 금액은 지난해에는 20억 원으로 미미했지만 2001, 2002년에는 150억여 원씩 지급된 전례가 있다.
‘기업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서 출산을 앞둔 여성들을 고용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당정의 설명도 검증이 필요한 대목.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어차피 고용보험의 상당 부분이 기업에서 낸 돈으로 꾸려지는 것 아니냐”며 “이 주머니에서 빼서 저 주머니로 채워 넣는 현상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사산 휴가도 대책 보완 필요=직장 여성들은 ‘말 못하던 고민’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의학계에서는 임신 중기(4∼7개월) 여성이 유·사산할 가능성을 5% 미만으로 보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 여성들의 유·사산율은 이보다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45일 휴가’로 규정하기보다는 기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드러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등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나라당 안명옥(安明玉·산부인과 전문의) 의원은 “임신 7개월에 유산할 경우 분만 여성과 같은 피로를 겪게 된다”며 “또 ‘유산 경력’ 공개를 꺼리는 여성들이 많아 휴가 일수 같은 규정은 좀 더 세분화하고, 휴가 명칭도 좀 더 포괄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