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으며 ‘어머니 신화’가 깨질 때 자녀도 독립적인 객체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를 그린 영화 ‘올가미’에서 어머니가 아들의 몸을 씻겨주는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루이 쉬첸회퍼 지음·이수영 옮김/288쪽·1만 원·한스미디어
원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가’이다. 번역판의 제목은 그보다 순화됐지만 여전히 도전적이다.
독일의 저명 심리학자인 저자는 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어머니의 유형을 ‘권력형’ ‘희생형’ ‘자기도취형’ ‘애정결핍형’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이런 유형의 어머니들은 자녀와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며 자녀들은 여기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대물림도 한다는 게 이 책의 초점이다.
먼저 권력형 어머니.
63세의 퇴직 공무원 요하네스 씨는 “어머니는 나를 늘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권력형 어머니는 자녀의 사소한 행동도 통제하고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며 소리부터 지른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힘 있는 이들에게 맞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찍 체득한다.
희생형 어머니는 희생을 내세워 자녀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자녀를 통제한다. 린데(60) 씨는 어머니에게서 ‘오로지 너를 위해 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의 불행한 삶이 내 잘못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희생형 어머니의 자녀는 책임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버림받는 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크사버(39) 씨는 어른이 된 뒤 여러 명의 여성을 동시에 사귀었다. 여성에게 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자기도취형 어머니는 미리 준비된 자녀의 이상적 모습을 품고 그것을 어떻게든 실현시키려 한다. 권력형은 강요와 억압을 수단으로 삼는 데 비해 이 유형은 정교하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성공한 저널리스트 만프레드(57) 씨는 “어머니가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에만 칭찬을 들었다”며 “난 어머니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존재였다”고 말했다. 자기도취형 어머니는 자녀의 미래를 돌본다고 하지만 이 때문에 자녀의 본성이 희생된다.
저자는 애정결핍형 어머니는 상상하지 못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의외로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타입의 어머니는 애정 표현이 전혀 없으며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녀에게 무관심한 이들도 있으며 애정결핍증이 대물림되기도 한다. 페트라(38) 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던 어머니처럼 되는 게 두려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직장에서는 성공하기도 했다. 페트라 씨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작은 관심이라도 얻으려고 애썼고 이는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 마침내 승진을 거듭했다.
저자는 어머니의 네 유형에 따른 배우자의 유형도 구분했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됐으나 어머니와 자녀 간의 문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점이 ‘새로운 아버지’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으나 저자는 “대부분의 여성은 자녀 문제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주변의 어머니들도 저자의 분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실감한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자녀가 40∼60%”라고 밝혔다. 저자는 어머니와 자녀의 독립적 관계를 위해서는 ‘어머니 신화’가 깨져야 하며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원제는 ‘In Aller Liebe Wie M¨utter Ihre Kinder Ungl¨ucklich Machen’(2004년).
허 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