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통상국가가 되려면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과의 FTA를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해 4월 1일 서울 성북동 삼청각에서 한-칠레 FTA 정식 발효를 기념해 양국 정부 관계자들이 축배를 드는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지 만 1년이 지났다. 한-칠레 FTA는 양국 간 교역증대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향후 정책을 좀 더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정부가 내세운 ‘선진형 통상국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칠레 FTA에 이어 지난해 한-싱가포르 FTA가 사실상 타결됐지만, 두 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교역량과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영향이 크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는 거대 경제권과의 FTA를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2004년 미국과의 교역량은 사상 최대치인 716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무역수지 흑자도 141억 달러에 달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위 교역시장이 됐지만 대(對)중국 수출 중 상당 부분이 중국 현지공장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원부자재임을 감안하면 미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FTA 발효 이후 무역수지는 악화되는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늘어난 대미 수입은 기타 수입국에서 미국으로 전환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의 총무역수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미국으로부터는 38억∼96억 달러, 기타 국가로부터는 178억∼222억 달러의 추가 투자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양국 간에는 정부 간 비공식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축소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사전에 해결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스크린쿼터 문제를 한국의 시장 개방 의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 영화는 2004년 시장점유율이 약 57%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으며 최근까지 한국영화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영화산업을 육성해 나가되 쿼터제에 대해서도 적절한 타협 방안을 제시할 시점이다.
한편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는 미국에 상당히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물론 광우병으로 금지된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재개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므로 단순히 통상 협상의 관점만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미국산 쇠고기는 까다로운 미국식품의약청(FDA)의 검사를 통과해 미국 내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2004년 기준으로 미국을 방문한 약 63만 명의 한국인과 약 8만 명의 유학생이 이미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또 올해 2월 국내 쇠고기 및 돼지고기 가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제한된 2003년 12월에 비해 각각 21%, 50% 올라 국민경제 측면에서도 수입 재개를 고려할 필요가 생겼다.
미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특히 농산물과 서비스시장에서 개방 압력이 클 전망이다. 이들 분야는 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도록 협상 방안을 세밀히 검토하고 그 필요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양국 간 FTA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고 선진형 통상국가로 나아가는 관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황두연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