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은 셰익스피어가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지 389주기가 되는 날이다. 셰익스피어는 시대, 문화, 지리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의 어휘와 구절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 낯설지 않게 인용된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세상에 좋거나 나쁜 것은 꼭 없어. 모든 게 생각 나름이야”, “이 세상은 무대요, 우리는 한낱 배우에 불과해” 등등.
셰익스피어의 인물과 작품들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고 삶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이들은 극작품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작가의 문학작품, 음악, 오페라, 그림, 영화 등 모든 예술 영역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셰익스피어에겐 40편에 이르는 작품이 있지만 우선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로 ‘햄릿’, ‘맥베스’, ‘좋으실 대로’, ‘폭풍’ 등 네 작품을 추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4개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겨 있는 번역서는 없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해설이 담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서 비극의 대표 격인 ‘햄릿’과 ‘맥베스’를 먼저 접해보자.
그러면 셰익스피어에 어떻게 접근해야 좀더 잘 감상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심리학자나 사상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세계는 마음을 열고 즐길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햄릿’은 복수비극 또는 사색과 우유부단의 비극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작품 ‘햄릿’에는 살인과 간통을 범한 클로디어스가 있으며, 왕의 명령을 따르다 애매한 죽음을 맞이하는 햄릿의 친구인 로젠크란츠와 길던스턴이 있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러 독백이 있는가 하면, 잔인한 복수 행위가 있고, 무덤 파는 광대의 인생철학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복수의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과 번민을 거듭한 뒤 햄릿은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신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며 인간의 운명은 한치 앞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맥베스’는 왕을 시해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 맥베스가 가증스러운 살인마로 타락해 가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참담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 극은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만을 수행하는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유가 되면 그의 희극 중 대표 격인 ‘좋으실 대로’와 ‘폭풍’도 접해보자. ‘좋으실 대로’는 권력욕과 질투 등으로 얼룩진 궁정에서 벗어나 관용과 용서, 자비가 가능한 자연 속으로 젊은이들이 도피해 낭만적 사랑을 이루는 목가적 환경 속에서의 연애희극이다.
반면 ‘폭풍’은 폭풍으로 인해 난파가 발생하자 원수지간인 형제의 아들과 딸이 사랑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서로 모든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로망스이다.
비극이 권력욕과 연관되어 살인과 암투, 복수가 난무하는 어두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희극은 우리가 동경하는 이상향을 무대로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을 보여준다.
변창구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