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먼저 알았어.” “여자가 아닌 게 되는 거지.” 내달 초 막이 오르는 뮤지컬 ‘메노포즈’(폐경기)에서는 폐경을 앞둔 중년 여성들의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정말 그러다 말기를, 제발 그런 일 없기를, 의사가 내게 준 알약 하나, 그게 날 더 돌게 했어. 돌팔이 같은 놈.’》
○ 터놓고 하기 힘든 이야기
폐경이란 나이가 들면서 난소의 세포가 노화해 에스트로겐이라 불리는 여성호르몬 생산이 줄면서 나타나는, 생리가 멈추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경나이는 16.5세, 폐경은 50세(한국갤럽 2001년 만 50∼59세 여성 1200명 조사).
전문가들은 스트레스가 많거나 고생을 많이 한 경우 폐경이 빨리 온다고 말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정덕희(68·서울 용산구 한남동) 씨는 40대 초반에 폐경을 맞았다.
“25년 시집살이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당뇨와 고혈압 증세도 40대에 왔습니다. 동창들은 모두 여성호르몬제를 먹었지만 저는 먹지 않았어요.”
뮤지컬 메노포즈에서 네 명의 50세 전후 여성들은 백화점 세일 행사장에서 마주친 뒤 폐경기 여성들이 고민하는 공통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난 외로워.’
‘난 지쳤어.’
‘난 걱정돼.’
‘난 소리치고파.’
그러나 여자들 사이에서도 폐경을 화제로 얘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메노포즈의 연출을 맡은 권은아 씨는 “폐경이라는 여자들만의 얘기를 하면서 즐기자는 것인데 우리 주부들이 터놓고 하기 힘든 얘기라 즐겁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폐경에 적극 대처하자
한국갤럽의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6.7%)이 폐경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의 예방과 증세 완화를 위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역시 비슷한 수(53.9%)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갱년기 증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여성들도 차츰 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예전에는 나이 들면 당연히 오는 갱년기 증세라고 치부했으나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우울증과 불면증을 호소하러 병원을 찾는 여성들이 심심치 않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뮤지컬에서 평범한 주부로 나오는 이경미 씨는 백화점에서 휴대전화로 친정어머니와 통화한다. “뭐 사러 왔지, 애들 거랑 애들 아빠 거랑. 내가 언제 내 것 사러 왔어?”
전문가들은 남편과 자식에게 희생적인 여성일수록 갱년기 우울증인 ‘빈 둥지 증후군’을 심하게 겪는다고 말한다. 공들여 키운 자식은 곁을 떠나고 남편과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면서 우울해진다.
중장비업체 사장인 남편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둔 주부 박신자(53·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2년 전 폐경이 오면서 남편이 싫어지고 아이들에게도 자주 짜증을 내게 됐다.
박 씨는 “남부럽지 않은 부부금실을 자랑하고 아이들과도 말이 잘 통하는 신세대 엄마였는데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일년 정도 폐경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이 계속되자 여성클리닉을 찾았다.
○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
전문가들은 중년 여성들에게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일거리를 찾으라고 권한다.
정덕희 씨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시작한다는 즐거움이 컸다.
분당제생병원의 정 씨 진료실에 들어서면 활기가 느껴진다.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선생님은 도대체 몇 살이시냐”고 묻는다. 정 씨가 나이를 알려주면 “정말로 직접 수술을 하실 거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정 씨는 “의료기기가 발달해 요즘은 손떨림 증세만 없으면 나이 든 의사들도 얼마든지 수술이 가능하다”며 “중년이 일찍 찾아왔지만 그 중년을 오래 붙들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정 씨는 2년 전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재임 시절 다른 여성 전문의와 함께 중년여성을 위한 건강백서 ‘아름다운 중년’이란 책을 묶어내기도 했다.
박신자 씨도 좀 더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하라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3개월 전 생활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박 씨는 “이 나이에 공연히 나서면 주위에서 ‘남편이 어려워졌나’거나 ‘아이들도 다 컸는데…’ 하는 식으로 쳐다볼까봐 자존심이 상했지만 두 딸이 적극적으로 권해 일단 시작했다”며 “건망증은 좀 남아 있지만 신기하게도 우울증과 불안감은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폐경기 우울증 예방 어떻게 하나▼
▽피임약을 일시에 끊지 않는다―에스트로겐 성분이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음식조절을 한다―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뚱뚱해지기 쉽다.
▽삶을 즐기도록 노력한다―삶에 대한 만족이 클수록 폐경기 우울증이 덜하다.
▽남편과의 관계에 신경 쓴다―대화를 많이 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