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뒷산인 덕산에 근래 들어 까치가 부쩍 늘었다. 높다란 아카시아 나무 위 여기저기에 새로 지은 까치집이 한눈에 봐도 30∼40개는 된다. 까치들은 땅에서 대여섯 길 되는 높이에 서너 가닥으로 갈라진 가지 틈새를 택해 마른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얹어 집을 지어놓았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지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듣던 까치 소리는 아침의 싱그러움을 더해 주는 신선한 노래였다. 까치는 희소식의 전령으로 반김을 받았고 ‘희작(喜鵲)’이란 한자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일 게다.
까치는 본래 대표적인 익조(益鳥)였다.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라는 국어사전의 낱말 풀이처럼 조상 대대로 까치는 ‘이로운 새’로 인식돼 왔다. ‘오작교(烏鵲橋) 전설’에서 “까치 까치 설날”로 시작되는 노래 ‘설날’에 이르기까지 까치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깃들어 있는 새이기도 했다. 의당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새로 꼽혀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까치를 보는 눈이 곱지 않게 바뀌었다. 까치를 엠블럼으로 삼아 대대적인 홍보를 펼치던 어느 은행이 소리 소문 없이 간판에서 까치를 지워 버렸는가 하면, 앞 다퉈 까치를 시조(市鳥)나 군조(郡鳥)로 내세우다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슬그머니 상징을 바꾼 지방자치단체들도 적지 않다.
어느 틈에 까치가 따돌림을 받는 딱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농작물을 해친다는 소문에 해조(害鳥)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특히 과수재배 농가들의 원성이 높은데 익어 가는 배나 사과를 쪼아 먹어 피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는 어른들이 까치 때문에 속을 끓이는 일을 보지 못했다. 논밭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그때라고 까치의 식성이 지금과 달랐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까치들이 농작물에 ‘입’을 대게 된 책임은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에게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환경을 악화시키고 까치의 먹이인 벌레 수를 급격히 줄였기 때문이다. ‘식량난’에 처한 까치들은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가꿔 놓은 농작물에 덤벼들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환경파괴가 ‘익조’ 까치를 ‘해조’ 까치로 바꿔 놓은 셈이다.
까치뿐만이 아니다. 환경파괴는 생태계에서 ‘인간의 적’들을 자꾸 만들어 낸다. 환경파괴가 계속되는 한 동물과 인간의 불화는 끊이지 않으리라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 까치. 예로부터 인가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기를 좋아한 까치. 어찌 이런 까치를 미워할 수 있을까. 사람과 까치 사이의 정분은 회복돼야 한다. 아침에 들려오는 까치소리가 반갑지 않고 밉살스럽게 느껴진다면, 동요 ‘설날’이 어린이 책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의 정서도 그만큼 스산해질 것이 틀림없다.
이덕림 ‘춘천학 공부모임’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