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금강산에서 북한의 문화보존지도국 이승혁 박물관처장으로부터 고구려 유물을 직접 넘겨받은 뒤 인수증에 사인할 땐 그야말로 가슴이 떨렸습니다. 하나하나 이건 국보급이고 어디서 나온 것이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글씨도 잘 써지지 않더군요.”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고구려 특별전’(5월 7일∼7월 10일)을 위해 북한의 고구려 유물 60점을 들여온 최광식(崔光植·한국사학과 교수·사진) 고려대 박물관장은 24일 그동안 북측과의 문화재 대여 협상에서 겪은 어려움과 감회를 이같이 털어놓았다.
이번에 들여온 고구려 유물은 북한이 자랑하는 국보 15점을 포함한 진수들. 돌함과 불상(佛像·평양 대성산 출토), 철제 사신(四神·강원 철원군 철령), 명문이 있는 금동판(함남 신포시 오매리), 뼈 단지(평양 대성산) 등 대부분 새로 소개되는 것들이다.
최 교수가 북한의 고구려 유물 전시를 본격 추진한 것은 2000년 고려대 박물관장을 맡으면서부터. 고려대의 교명(校名) 역시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이 고구려의 씩씩한 기상과 자강자주의 영광을 계승한 고려에서 따왔다는 점에서 개교 100주년을 맞아 북한과 일본 중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유물들을 한데 모아 특별전을 기획한 것.
그러나 북한과의 유물 대여 협상은 쉽지 않았다. 학술행사 등을 위해 매년 두세 차례 북한에 갈 때마다 박물관과 문화재 관련 인사들을 만나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지만 문제는 북한 당국의 허가였다.
“북측 인사들에게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본에 있던 유물들도 오는데, 북한 유물이 빠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끝까지 설득했죠.”
북한 당국자들의 소극적 자세를 바꿀 수 있었던 계기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남북 역사학자 간의 공동 대응이었다. 2003년 한국사 관련 학회들의 연합체로 결성된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최 교수는 북한에 적극적 공동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북한지역의 고구려 유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남북은 공동 학술대회와 사진전을 가진 데 이어 이번 고구려 유물 전시회까지 성사시켰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