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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수행평가 뜻은 좋지만…창의력 테스트? 베끼기 테스트?

입력 | 2005-04-24 18:18:00


《중3 학부모인 김모(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씨는 아들이 국어 수행(遂行)평가 과제로 교과서 단원평가 부분의 문제와 답을 커다란 차트 3, 4장에 몇 시간씩 걸려 써 가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김 씨는 “창의적 활동도 아니고 교과서를 베끼는 수행평가가 글씨 쓰기 평가인지 요식행위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일선 초중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행평가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요식행위? 시험 코앞 통보… 학교서 안배운것도▼

교육당국은 학기 초 과목별 수행평가 계획과 내용, 기준을 미리 고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중간고사 2, 3주 전에야 알려주고 있는 곳도 많다. 너무 어려운 과제를 내 주거나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평가만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체육교사는 “선생님도 테니스공을 벽에 50번 못 치면서 왜 우리만 평가하느냐”는 학생의 항의를 받은 사례도 있다.

중3 학부모인 한모(40·서울 서초구 서초동) 씨는 “아들은 체육에 대한 소질은 없어도 항상 열심히 노력한다”며 “수행평가가 ‘과정’보다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서일중 2학년 김유흰(14) 양은 “책의 필기 상태를 평가하는 경우 열심히 필기해도 글씨를 잘 못 쓰면 억울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차별? 남녀공학선 글씨 잘 쓰는 여학생 유리▼

고1 자녀를 둔 이모(43·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남학생은 글씨를 잘 못 쓰고 덜렁대는 반면 여학생은 꼼꼼하고 악기도 잘 다뤄 남학생이 불리하다”며 “요즘은 내신 때문에 학부모가 수행평가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 등지에선 여학생 학부모는 남녀공학을 선호하고, 남학생 학부모는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남녀공학의 경우 남학생이 시험이나 수행평가에서 여학생보다 꼼꼼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전교 10등 안에 남학생이 한 명도 못 끼는 사례도 있다.

서울 진선여중 김부영(15) 양은 “모둠활동은 결과만 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별 평가가 잘 안 된다”며 “어떤 친구는 모둠활동에 불성실한데도 평가는 똑같이 받는다”고 말했다.

▼과외조장? 미술학원서 그려준 과제 그대로 제출▼

고2 학부모인 박모(42·서울 강남구 도곡동) 씨는 “정보가 빠른 학부모는 선생님이 정해지면 작년에 뭘 했는지 미리 알아내 단기 과외를 한다”며 “미술 과목은 학원에서 그려준 그림을 수행평가 과제물로 내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중3인 이모(15) 군은 “자화상 수행평가는 얼마나 닮았느냐를 평가한다고 해 미술학원에서 주 1, 2회 지도를 받아 제출한다”며 “학원에서 해 온 숙제인지 선생님이 아는 것 같지만 문제 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고충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인창고 최용주(崔鎔注) 교감은 “한 한문교사는 20개 반 700명을 가르치기도 한다”며 “학생 수가 많은 상황에서 수행평가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수행평가:

학생이 학업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 것으로 지필고사 위주의 평가를 지양하고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방법. 평가 횟수나 기준, 반영비율 등은 학교별 교과협의회에서 정한 뒤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결정한다. 과목별로 실기, 실험실습, 듣기, 말하기 등이 포함된다. 주요 과목의 수행평가의 비율은 30%, 예체능은 70∼80%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