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반일(反日) 시위로 1972년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닫던 중일 관계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만난 결과다. 일촉즉발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충돌 상황이 수그러드는 것을 보며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후 주석이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역사문제는 토론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나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문제는 양국 관계 악화의 주 요인이었고 이번 회담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도 후 주석은 이를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도 반일 시위에 대해 ‘적절한 대응’만 요망하는 선에서 말을 아꼈다. 두 정상은 왜 ‘할 말’을 다 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말해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수 없는 대국(大國)인 데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성장 지속과 베이징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는 일본의 자본과 협조가 필요하다. 일본도 최대 교역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등지고는 살 수 없다. 두 지도자는 더 큰 국익을 위해 타협을 택했다.
이런 분위기는 정상회담 전부터 감지됐다. 중국은 허가받지 않은 반일 시위를 철저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 전에 ‘통절한 반성과 사과’로 중국을 배려했다.
씁쓸한 대목은 양국의 갈등 수습 과정에 한국은 없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한국을 의식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저 ‘아시아’라는 말 속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국보다 먼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하게 문제 삼았는데도 말이다.
노무현 정부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시험(試驗) 무대엔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후 주석에 대해서만큼 노 대통령에게 몸을 낮추지도 않고 있다. 한국을 자학(自虐)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력이 따르지 않는 일방적 외침은 공허할 수밖에 없음을 제대로 깨닫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