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만난 이해찬 국무총리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북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 총리가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등으로 중단된 당국자회담의 재개 필요성을 설명하자 김 위원장은 ‘민족 공존’을 강조하며 동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교감이 어떤 수준의 남북대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솔직히 공허하게 들린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대화도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6월 시한설(時限說)’ 속에 미국은 이미 북핵 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정, 대북(對北) 경제제재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북한이 6자회담을 계속 거부하면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다.
이 총리는 김 위원장에게 “당국자회담을 해야 남측 교류협력기금을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지 않겠느냐”며 북한이 회담에 응해만 준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남북대화에 대한 총리의 열망은 이해한다. 그러나 말로는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도 모든 것의 걸림돌인 북핵 문제 해결에서는 한발도 나가지 못하는 회담이라면 굳이 매달려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이달 들어 영변 5MW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또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까지 했다. 급한 것이 북핵 해결이라면 정부는 더 크게 보고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이 총리의 발언이 심각한 북핵 상황과 동떨어진 것으로 관계국들에 읽힌다면 문제다.
김 위원장은 이 총리에게 “외세에 의해 국토가 양단돼 낯선 이국땅에서 상봉하니 민족 불행이 원통스럽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 의도가 감상적 민족지상주의를 부추기고, 당장은 ‘남측으로부터 비료 50만 t을 쉽게 얻어내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중론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우리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