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우영 화백 자화상
25일 타계한 고우영(高羽榮) 화백이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 기획했던 ‘한국 만화 야사(野史)’(가제)가 미완성으로 남게 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한국만화사를 정리하는 일은 1952년 중학생 때 만화계에 뛰어들어 한국 만화의 ‘살아있는 역사’이던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고인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목격한 한국 만화계의 광복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일화와 뒷얘기들을 특유의 필치와 화풍으로 기록하려 했다고 유족과 동료 만화가들은 전했다.
몇 년 전부터 옆에서 고인의 작업을 도와온 둘째아들 성언(成彦) 씨는 “아버지는 이 작품을 자서전처럼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원래는 모두 만화로 그리려 했으나 체력이 달린 고인은 원고지 7, 8장 분량의 글과 만화 한두 컷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2회 분량을 시험적으로 완성했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는 것. 올해 초부터 이를 한 일간지에 연재하려던 계획도 고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무산됐다. 성언 씨는 “아버지께서 원고로 남기신 분량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4년 전부터 자신의 과거 작품들 중 검열로 바뀐 부분을 원본 그대로 다시 그려 펴내는 작업도 해왔다. 지금까지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일지매’ 등이 복간됐고, 다음 달 ‘열국지’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인이 가난했던 젊은 시절부터 서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낸 동료 만화가들의 모임 ‘심수회(心水會)’의 신문수(申文壽) 화백은 “병이 악화돼 예전처럼 머리가 맑지 않게 된 고인은 ‘다음 달이면 머리가 맑아질까…. 정말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데…’ 하며 작업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전했다.
애주가였던 고인은 병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자 “술친구와 멀어지는 것이 정말 괴롭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4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15년 동안 매주 고인과 골프를 했던 허영만 화백은 “고인이 한번은 전화를 하더니 ‘술 먹으면서 아플 수 있는 병은 없나’라고 말씀하셔서 가슴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자전거처럼 54년 동안 쉬지 않고 사각 칸을 메워 왔던 고인은 이제 하늘에서 술 한잔 걸치며 잉크 묻힌 펜을 휘두르고 있을 것 같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