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이가영화사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솔직하다.
‘반지의 제왕’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성한 대규모 전투장면에 비견될 스펙터클을 진짜 사람 3000여 명을 동원해 찍었다고 해서만이 아니다. ‘글래디에이터’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인류의 평화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영화 곳곳에서 주요 인물들의 대사로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1184년 프랑스 시골 마을의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에게 덕망 높고 신뢰받는 영주 고드프리(리암 니슨)가 찾아온다.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말한 “나는 네 아버지다(I'm your father)”라는 유명한 대사를 고드프리도 한다. 이 아버지가 죽기 전 기사작위를 받은 발리안은 신화에서 영웅이 겪을 법한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루살렘의 왕(에드워드 노턴)에게서 신임을 얻은 발리안. 그러나 기독교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 간의 6년 평화를 깨뜨리려는 프랑스 귀족 기욤의 음모로 양 진영은 결투를 벌이고, 결국 십자군은 참패한다. 발리안은 남은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결전을 준비한다.
발리안은 이렇게 해서 영웅이 된다. 그는 힘없는 백성의 안위와 평화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다. 평범한 대장장이였던 그는 아무런 훈련도 없이 훌륭한 전사가 되고, 수십만 대군 앞에서 침착하게 기묘한 전술을 구사하는 군사(軍師)로 돌변한다. 발리안이라는 인물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너무 평면적이고, 중요한 선택 앞에서도 고뇌하는 인간의 냄새를 잘 풍기지 않는다.
그러나 올랜도 블룸은 이런 영웅을 표현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절체절명의 순간, 전의를 불태우는 장면에서도 화면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가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일 때는 그 옆의 이아곤(비고 모르텐슨)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윌 터너일 때는 잭 패로(조니 뎁)가 그를 빛냈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리암 니슨, 제레미 아이언스, 에드워드 노턴 등이 열연하는 영화 전반부에서 올랜도 블룸은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후반부에서 영화는 지루해지고 그는 빛을 잃는다. 이를 의식한 듯 리들리 스콧은 올랜도 블룸의 액션보다는 사막을 가득 채운 군대, 빗발치는 화살과 돌 포탄 등의 스펙터클로 화면을 채운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 속 예루살렘을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부글부글 끓어대는 현재의 공간으로 은유한다. 그는 ‘신의 뜻은 저 먼 곳이 아닌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 있다’며 어리석은 종교전쟁을 그만 하자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 뜻을 전달하는 데 1억 달러(약 1000억 원)나 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4일 개봉. 15세 이상.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