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필름사공일
‘가을동화’의 아역스타에서 ‘어린신부’로 소녀스타가 된 문근영(18)은 다음 단계로 성인이 되기 전 숙녀스타로 연착륙할 것인가. 영화 ‘댄서의 순정’은 영화 자체보다 문근영의 변신에 더 관심이 쏠렸던 작품이다.
한국 댄스스포츠계의 최고 스타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라이벌이자 협회장의 아들인 현수(윤찬)의 계략에 빠져 탈락한 영새(박건형)는 실의에 빠진다. 선배 마상두(박원상)의 소개로 중국 옌볜에서 조선족자치주 댄스선수권대회를 2연패한 장채민이라는 여성을 새 파트너 삼아 다시 도전하려는 영새. 그러나 정작 한국에 온 여성은 언니 이름과 여권을 빌린, 춤 한번 추어본 적 없는 19세 채린(문근영)이다. 절망한 영새는 채린을 내치지만 그의 순수함에 끌려 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댄서의 순정’에서 댄서는 사라지고 순정만 남았다.
이 영화에서 댄서는 ‘처음 본 남자 품에 얼싸 안겨, 붉은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가 아니다. 영화 초반 영새가 서울 가리봉동 루루라는 곳에서 춤추게 됐다는 채린을 업소에서 빼내 업고 갈 때 이미 영화는 삶의 쓴맛을 본 ‘성인’ 댄서에 대한 미련을 일찌감치 버린다.
그렇다고 댄서에게 관능미가 물씬 풍기지도 않는다. 남녀의 몸과 몸이 밀착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룸바 삼바 차차차를 추고, 채린이 대회에서 입는 옷도 등이 깊게 파이고 속팬츠가 보일 듯 말 듯 한 원피스지만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6개월간 발가락이 문드러지고 발톱이 빠질 정도로 연습한 문근영의 춤 솜씨 탓이라기보다는 그를 성인이 아닌 숙녀로 머물게 하고 싶었던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 덕에 순정만은 영화 내내 앙증맞고도 아름답게 살아 있다.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사랑이 아니라 연모하는 상대가 자신에게 운명처럼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순정. 세상을 알아버린 여인은 이미 상실한, 숙녀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이다.
영화는 이런 순정을 여러 장치로 꼼꼼히 엮었다. 채린은 ‘사랑의 빛을 밝히고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린다’는 반디부리를 키우고, 채린이 20세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도 스무 송이 장미와 향수다.
옥탑방 치고는 넓은 집에서 채린이 영새에게서 춤을 배우는 동안 영화는 아기자기한 몸짓과 대사로 싹터가는 둘의 사랑을 발랄하게 표현한다. 특히 위장결혼 상태인 둘이 결혼 전의 만남과 연애를 가상으로 꾸며내는 장면에서는 흐뭇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채린이 그 방에서 짐을 싸고 나오는 순간부터 영화의 호흡은 늘어지기 시작한다.
‘소녀’ 문근영은 군데군데 남은 ‘어린 신부’의 잔영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일단 성인이 되기 전 ‘숙녀’로 연착륙했다. 여성 관객의 숨을 잠시 멎게 할 정도로 빼어난 몸매를 지닌 박건형이 엔딩 자막이 오를 때에야 비로소 멋들어진 춤을 추는 것은 아쉽다. 28일 개봉. 전체 관람 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