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모를 찾아서’
영화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에서 말린은 외동아들 니모를 과잉보호하는 아빠 물고기이다. 어느 날 니모가 한 잠수부에게 잡혀가자, 말린은 친구 도리와 함께 아들을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가까스로 호주 시드니 항에 도착한 말린과 도리는 니모를 잡아간 배를 찾게 되는데, 이 급박한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은 이렇다. 지쳐서 졸고 있는 도리를 말린이 깨운다. 눈을 겨우 뜬 도리는 둘을 노리고 날아드는 펠리컨을 보고 왕방울 만해진 눈으로 “duck”이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자 말린은 “저건 오리가 아니라 펠리컨이야”라고 한다. 그러자마자 펠리컨이 달려들고, 둘은 잡아먹힐 뻔한다. 그런데 두 친구가 펠리컨의 아침밥이 될 뻔한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뭐가 우스워서?
웃음의 열쇠는 바로 ‘duck’. Duck하면 척 떠오르는 게 ‘오리’이다. 그런데 duck은 조류인 오리 외에 다른 의미로도 쓰인다. 이 장면에서 도리와 말린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은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유머인 ‘참새 시리즈’ 중 “수그리”와 일맥상통한다. 경상도 출신 참새의 사투리 “수그리(숙여)”를 못 알아들은 다른 참새들이 포수의 총에 맞았다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도리가 “duck”하고 소리친 건 “오리”가 아니라 “숙여” 혹은 “구부려”하고 펠리컨을 피하라고 한 건데 말린은 ‘오리’라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한가하게 “That’s not a duck. It’s a pelican(저건 오리가 아니라 펠리컨이야)”이라고 여유를 부리다가 펠리컨에게 먹힐 뻔한다.
Duck을 동사로 쓰면 도리가 한 말처럼 ‘머리(몸)를 홱 숙이다 혹은 굽히다’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나라 말에 ‘오리발 내밀기’처럼 오리와 관련된 표현이 영어에도 있다. 몇 개만 보자면 “그는 ‘봉’이야”는 “He is a sitting duck”, “나는 미운 오리새끼였다”는 “I was an ugly duckling(duckling은 새끼오리)”이다. 또 ‘lame duck president’ 하면 권력 누수현상이 드러나는 집권 말기의 대통령을 의미하고, ‘lame duck congress’는 권력누수현상이 일어나는 의회를 뜻한다.
Duck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그는 재임 시절인 1981년 3월 30일 저격을 당했는데, 그 뒤 부인 낸시에게 한 말이 매스컴을 타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그건 바로 “Honey, I forgot to duck(여보, 수그린다는 걸 깜빡했어).”
배우 출신답게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쇼’에 가장 능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그는 단순한 문장으로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타고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Duck은 ‘몸을 숙이다’라는 뜻 외에 ‘책임을 회피하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레이건은 정말 그 특유의 매끄러운 제스처로 책임 회피에도 능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Teflon president(테플론·프라이팬을 매끄럽게 해서 들러붙지 않게 하는 코팅제)’. 아무리 매끄러운 그도 총알은 피할 수 없었던 듯하다.
김태영 외화번역가·홍익대 교수 tae830@yahoo.co.kr
▼대사보기▼
Marlin: Dory, wake up. Wake up, come on.
Dory: Duck!
Marlin: That’s not a duck. It’s a pelican.
Marlin & Dory: Whoa! Aah!
Marlin: No! I didn’t come this far to be
breakfast!
말린: 도리, 잠 좀 깨, 눈 좀 뜨라고!
도리: 수그려!
말린: 저건 오리가 아니라 펠리컨이야.
말린과 도리: 아악!
말린: 내가 아침밥 되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