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을 학의 날개처럼 넓게 펼쳐 적을 포위하는 진법인 ‘학익진’은 세계 해전사에서 23전 23승의 불패 신화를 이뤄 낸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략이었다. 이 그림은 경남 통영시 충렬사에 소장돼 있다.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2/이순신역사연구회 지음/각권 400쪽 안팎·각권 1만2000원·비봉출판사
◇부활하는 이순신/황원갑 지음/416쪽·1만8000원·이코비즈니스
◇불패의 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윤영수 지음/269쪽·1만 원·웅진지식하우스
“나는 일찍부터 원균을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사람으로 여겼으며…이제 원균을 오히려 2등 공신으로 낮춰 책정했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임진왜란 후 공신 선정 과정에서 선조가 당초 2등 공신이던 원균을 1등 공신으로 올려 주면서 한 말이다. 오늘날 몇몇 소설이나 TV 드라마의 단골메뉴가 된 ‘원균 명장론’의 근거로 사용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순신을 3도수군통제사 자리에서 파면하고 원균을 그 자리에 앉힘으로써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해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선조 자신의 궁극적 책임을 피하려는 궤변이었다는 게 객관적 평가일 것이다.
이 같은 ‘원균 명장론’의 허구성은 충무공 탄신 460주년(28일)에 맞춰 봇물 터지듯 하는 이순신 연구서 출간 붐의 핵심 동인(動因)이기도 하다.
‘신에게는 아직도…’는 아마추어 이순신 연구 동아리 회원들의 오랜 현장답사와 자료조사의 결과물이다. 전 4권 가운데 두 권을 먼저 냈다. 이 책은 원균의 후손들이 문인들에게 의뢰해 발간한 ‘원균 행장록’의 오류를 당시 해전기록을 토대로 밝혀냈다.
이순신이 구사한 해전의 특징은 ‘거북선과 학익진(鶴翼陣)이 결합한 백병전 없는 순수 함포전’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원균 행장록’은 원균의 장졸들이 왜의 선단에 올라가 백병전으로 대승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의 많은 이순신 연구가들의 오류도 지적한다. 특히 거북선이 왜의 기함을 들이받아 왜선의 옆구리를 파괴하는 ‘직충(直衝·ramming)’의 개념을 그저 ‘치고 들어가’ 또는 ‘근접하여’라는 번역으로 해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20세기 일본 해군은 ‘직충’을 오역하지 않고 이순신의 해전 원리를 제대로 해독해 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했고, 그 후 영국 해군이 일본 해군의 해전 원리를 승계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할 수 있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부활하는 이순신’의 저자 역시 요즘 TV 드라마 등이 용렬(庸劣)한 장군 원균을 용장으로 만들기 위해 상대적으로 이순신의 인격과 전공을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이순신을 두 번 죽이는 모독이라고 주장한다.
원균이 한 일이라곤 부하 없는 장수가 되어 겨우 3, 4척의 전선으로 이순신 함대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죽은 왜병들의 목을 잘라 재빨리 조정에 보낸 것이 고작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선조실록’에 원균이 개전 초 왜선 10∼30척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나오지만, 이 역시 오로지 원균의 보고에 따른 것이지 객관적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
반면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를 용병술과 리더십의 관점에서 해부한 ‘불패의 리더…’의 저자는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기획 및 초반 대본작업에 참여했던 방송작가인 탓에 “이순신이 지장(智將)이라면 원균은 용장(勇將)”이라는 관점 아래 원균에 대해 관대하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한 책임을 지휘관인 원균에게 물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무모한 공격을 강요한 조선 조정의 책임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