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프랑스 코드’가 두드러지고 있다.
당선자 시절부터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의사를 밝혔던 노 대통령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를 책임총리로 하는 분권형 국정 운영을 해 오고 있다.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은 28일 노 대통령에게 프랑스식 국방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보고했다. 이에 앞서 여권 인사들은 이른바 ‘언론개혁’과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프랑스 사례를 말하곤 했다.
무엇이 노무현 정부의 ‘프랑스 경도(傾倒)’ 현상을 만들어내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중심에 노 대통령이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과 드골=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은 13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한 프랑스대사관 관계자와 프랑스문화원에 근무하는 한국인과 자주 어울렸다”며 “노 대통령이 프랑스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경제 모델이 사회민주주의가 가미된 유럽식 자본주의 모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이라는 저서를 낸 외교통상부 이주흠(李柱欽·현 미얀마 대사) 심의관을 대통령리더십비서관으로 발탁할 정도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심을 보였다.
드골 대통령은 장기 집권(1959∼69년)하면서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며 미국과 당당히 맞선 인물. 국가 주요 정책을 자신의 재신임과 연계하는 국민투표를 여러 차례 실시했다. 측근 비리와 관련해 재신임 카드를 던지고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각을 세우는 노 대통령의 정치 방식은 드골과 닮은 데가 있다.
▽프랑스 브레인?=청와대에서는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 주로 노 대통령에게 프랑스에 관해 입력을 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추천한 사람도 이 위원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위원장이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지만 분배경제학을 전공해 사회복지제도를 비롯해 프랑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성(丁宇聲) 대통령외교보좌관도 외교통상부 근무 때 파리 국제행정대학원에서 연수를 했다. 그러나 정 보좌관은 “노 대통령이 내게 프랑스에 관해 물어보거나 내가 자문에 응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없나?=프랑스가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경도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프랑스는 좌파정부 시절의 복지 위주 정책으로 연금 재정 고갈 우려에 경기 부진까지 겹쳐 자크 시라크 대통령 정부가 연금개혁을 비롯한 우파정책을 적극 도입하는 중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전쟁 반대를 비롯한 반미 행보로 한때 지지율이 80%대까지 육박했지만 미국의 와인 불매운동과 이라크 전후 처리 과정에서의 배제 등으로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국방부가 국방개혁의 모델로 삼는 프랑스 내에서는 미국으로부터 ‘홀로 서기’ 할 수 없는 국방력에 대한 회의가 크다. 한 해 유럽연합(EU) 국방비 합계의 3배 이상을 국방비로 쏟아 붓는 미국으로부터의 ‘자주국방’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세계 1위의 관광대국이며 영국과 함께 세계 4, 5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이자 문화대국인 프랑스의 제도를 들여오는 것이 우리의 능력과 실정에 맞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