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놀이터에 의도적으로 찾아간 것은 프랑스 아비뇽 축제가 처음이었다. 50년도 더 된 이 축제는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모여드는 세계 최고의 행사다.
해마다 7월이면 유서 깊은 소도시 아비뇽은 눈 닿는 모든 곳이 무대로 변한다. 실내공연장은 물론 골목길 모퉁이, 카페의 테라스, 허름한 술집의 다락방, 심지어 폐업한 채석장마저 환상적인 무대로 변신하는 마술을 보여 준다. 마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가나 구경하는 관객 모두 뭔가에 홀린 듯 몰두한다. 공연이 끝나면 카페에 모여 시원한 맥주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렇게 여름밤은 깊어 가고 사람들은 일상의 더께를 털어낸다.
아비뇽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훌쩍 다른 길로 들어섰음에 틀림없다. 그 뒤로는 대중과 문화예술이 만나는 곳마다 찾아다녔으니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정말이었다. 전에는 주어진 문화를 받아 누리기만 하는 관객이었지만 그때부터는 관객을 위해 어떻게 판을 짤까 궁리하는 기획자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내친 김에 예술경영학을 배웠고 아비뇽이 얼마나 큰 경제적 자원인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고부가가치 덩어리인지를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한탕주의 상업성에 빠진다면 그거야말로 한치 앞도 못 보는 바보짓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는 환경재단 그린페스티벌을 맡게 되었다. 내게 소중한 인생의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니 그건 행운이었다.
지난해 시작한 그린페스티벌은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장르인 영화와 사진으로 말문을 열었다. 성숙해진 시민의식만큼이나 환경을 얘기하는 데도 문화가 필요하다. 환경이야말로 앉혀놓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와 공감 속에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보게 된 좋은 사진 한 장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며, 친구와 함께 본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은 두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이렇게 하나둘씩 바뀌어 갈 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파란 하늘, 맑은 물은 좀 더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수줍은 목소리로 감동을 전하는 관객들을 만날 때마다 이 확신은 깊어진다.
그래서 문화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문화란 공기라고 대답하겠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그것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는 바로 그런 것이다. 환경 역시 어쩜 그리 똑같은지 깨닫게 됐다.
사방에서 축제가 봄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다. 그 내용과 진정성을 따지기 전에 우선 마음을 열어놓고 맨발로 펄쩍 뛰어들어 한바탕 놀아 보시기를 권한다. 아, 물론 쓰레기는 직접 수거하시리라 믿는다.
이은진 환경재단 그린페스티벌 사무국장
▼약력▼
1962년생. 이화여대, 파리3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파리7대학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공부했다. 공주영상정보대 겸임교수를 거쳐 그린페스티벌 사무국장으로 서울환경영화제 등 문화사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