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대작으로 전설의 인물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원래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중세 말의 마법사다. 그는 자연과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어 악마와 계약을 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파멸하고 단죄를 받는다.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세계의 운행이치를 인간 이성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신성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게 보면 전설의 파우스트는 근대의 여명기에 기독교의 권위와 금기에 맞서 인간중심주의를 추구한 인간형의 표본인 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서구 근대세계를 탄생시키고 지탱해 온 그러한 인간중심주의와 맹목적 발전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담고 있다. 사적 영역에서 전개되는 1부에서는 근대적 자아의 탄생, 인간의 본성과 욕망이 중심주제를 이룬다. 공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2부에서는 근대화 과정의 역동성과 내적 모순이 전면에 부각된다.
기독교 신앙의 마법에서 깨어난 현대의 문턱에서 파우스트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 위해 끝없이 갈망하며, 자신의 뜻대로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현대세계의 기획자로 등장한다. 그는 또한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여 삶을 남김없이 맛보려는 무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만 준다면 영혼도 바치겠다는 파우스트의 내기는 욕망의 충족에 모든 것을 거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신의 섭리를 대체하는 파우스트의 절대정신은 끝없는 자아 확장을 꿈꾸면서 시공간을 가로질러 쉴새없이 방황한다. 파우스트의 이러한 모험을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은 ‘현대세계의 일리아드’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행동과 실천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푸르른 것은 삶의 황금나무’라는 충동에 이끌려 파우스트는 새로운 삶의 체험을 추구한다. 그러나 충족을 모르는 파우스트의 욕망은 결국 그레트헨 일가족을 죽음의 파멸로 몰아넣는다. 파우스트의 자아 확장 욕구는 극단적인 자아 분열과 황폐화로 귀결되고 ‘푸르른 삶’의 원천인 여성성과 모성의 파괴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욕구와 신념에 충실할수록 파괴적 혼란을 초래하는 비극적 양상은 2부에서 역사의 세계로 확장되어 더욱 극적으로 전개된다. 정치가로 변신한 파우스트는 이상적 공동체의 터전을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에 전력을 기울이지만,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인명 살상과 착취를 일삼는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구적 합리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과업을 완수하는 순간 파우스트는 눈이 멀지만, 그럼에도 지상낙원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환각에 빠진 파우스트를 가리켜 메피스토펠레스는 완공된 간척지가 다름 아닌 파우스트의 무덤이라고 비꼰다. 파우스트 프로젝트의 이 비극적 아이러니는 국민 동원 체제 위에 구축된 근현대 국가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나아가서 인류문명이 자기성찰을 결여할 때는 파국적 재앙을 잉태하는 눈먼 질주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19세기의 ‘파우스트’는 문학사의 정전(正典)으로 모셔 둘 책이 아니라 21세기 독자들이 읽어야 할 ‘인류사의 드라마’인 것이다.
임홍배 서울대 교수·독어독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