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작년까지 7년간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번 돈이 같은 기간 한국이 벌어들인 경상수지 흑자와 맞먹는다는 분석이 얼마 전 나왔다.
외국자본의 상당수가 연기금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개미투자자들이 다른 나라 국민의 노후자금을 대준 셈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얻은 이익을 합치면 외국자본이 가져간 돈은 더 많아진다.
정작 한국의 연금은 곧 바닥날 형편이다. 한국의 연기금도 해외에서 그만한 돈을 벌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을 해온 한국은 그동안 해외 투자에 매우 엄격했다.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투자하고 소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외화 유출은 ‘국부 유출’로 여겨졌고 해외 부동산 투자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제조업과 제품 수출만으로는 선진국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계속 성장하려면 서비스업, 특히 금융 법률 의료 등 지식기반 서비스업이 발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비스업도 국내 시장의 빗장을 푸는 것은 물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해외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유입을 촉진하고 유출은 규제하는 현재의 외환정책을 바꾸겠다”면서 “해외 투자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4위의 외환보유액이 환율과 물가 관리에 부담이 되는 데다 여유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취지다.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방법이다.
투자전문가들은 한국 금융업계의 국제경쟁력을 물어보면 손사래부터 친다.
“아이디어를 갖고 정부를 찾아가면 ‘전례가 없다.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료를 설득하고 법이나 시행령을 고치다보면 1년이 갑니다. 누가 해외 투자를 하겠습니까.”
“투자요? 규제가 많아서 사안별로 회사를 하나씩 만들다 보면 금세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이 되죠.”
정부로서는 한번 풀면 다시 묶기 어렵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것이다.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통제수단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 없는 곳에 사업도 없다’는 발상으로는 몇 가지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금융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사업에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선진국들처럼 민간이 앞서 가게 하고 정부는 예의주시하면서 그 뒤를 쫓아 부작용을 없애는 방식이 돼야 한다.
외환 안정에 꼭 필요한 핵심 장치를 제외하고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 맡기라는 얘기다.
“생사를 걸고 변화하는 민간기업을 책상머리 공무원들이 하나하나 코치할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는 업계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