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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만나는 고구려]명문금동판

입력 | 2005-05-02 19:21:00

함경남도 신포시 오매리 유적에서 나온 명문 금동판. 한국 고대사 연구의 끊긴 맥을 이어줄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사진 제공 고려대박물관


“원하옵건대 왕의 영혼이 도솔천(兜率天)으로 올라가 미륵(彌勒)을 뵙고 천손(天孫)이 함께 만나며, 모든 생명이 경사스러움을 입으소서.”

1988년 6월 함남 신포시 오매리의 이른바 절골 유적에서 출토된 명문(銘文·새긴 글씨) 금동판에는 이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명문 가운데 ‘천손’이란 말은 중국의 천자(天子)나 일본의 천황(天皇)에 상응하는 개념. 그 이전까지 발해 문왕(文王)이 사용했던 ‘천손’이란 단어가 이웃나라를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고구려 금동판의 발견으로 발해 ‘천손’의 원류가 고구려임이 확인됐다.

앞부분은 깨어져 없어지고 뒷부분만 남아 있는 이 금동판의 명문 중 현재 확인되는 글은 12행으로, 이 중 판독이 가능한 글자가 113자이고 떨어져 나갔거나 마모돼 식별이 어려운 글자는 26자이다.

특히 명문에는 탑을 건조한 내력과 함께 ‘○和三年 歲次 丙寅 二月二十六日’(○화 3년 세차 병인 2월 26일)이라는 작성 일자가 나와 있다. 여기서 ‘○和’라는 연호는 자획이 떨어져 나가 분명치 않으나, 북측은 이를 ‘태화(太和)’로 판독하고 고구려 양원왕(544년 또는 545년∼559년) 때인 546년 2월 26일 이 금동판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학계는 또 이 금동판은 외척세력 간에 발생한 왕위계승 분쟁 와중에서 사망한 안원왕을 위한 추복(追福) 불탑의 탑지(塔誌)로 보고 있다. 이 불탑을 봉헌한 측은 옛 동옥저(東沃沮)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으나 왕위계승 분쟁에서 패배한 세력일 것이라는 게 학계의 추론이다.

▽도움말 주신 분=송기호(宋基豪·한국사) 서울대 교수, 이도학(李道學·한국사)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참고 북한자료=조선유적유물도감 제4권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