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는 1888년 라이프치히에서 브람스를 처음 만났다. 독일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활동하며 범(凡)독일어권을 대표했던 대 작곡가 브람스(당시 55세), 슬라브권을 대표했던 러시아의 대표적 거장 차이코프스키(당시 48세).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브람스의 제자인 옌너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매력 있고 친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는 음악을 표현하는 ‘사랑스런 감정’에 대해 얘기했다. 이에 반해 브람스는 ‘사랑스런 감정’도 음악을 쌓아나가는 구성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된 것이라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만남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브람스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기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왜 브람스는 그렇게 어렵게 음악을 쓰는가? 똑같은 감정이라면 쉽게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교의 시대’에 영향력이 강한 음악가들이 만나 친교관계를 맺는 것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의 만남은 미세한 긴장을 일으켰지만 브람스와 체코의 드보르자크, 차이코프스키와 노르웨이의 그리그는 서로 마음이 잘 맞았다.
교향곡 작곡가로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겠다고 생각한 구스타프 말러는 1907년 핀란드에서 교향곡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던 얀 시벨리우스를 찾아갔다. 말러는 ‘교향곡은 우주다’라는 교향곡 관(觀)을 피력했다. 작곡가가 가진 모든 상상력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벨리우스는 여러 음악적 동기(動機)들을 잇는 논리와 작곡가 자신의 지역적, 개인적 특징을 더 강조했다.
오늘날 음악가들은 옛날보다 덜 만나는 것 같다. 기자로서도 같은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두 음악가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는 “비교되는 것이 싫습니다”라며 거절하고 만다. 비교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의도인데….
마침 토요일인 7일은 브람스의 172번째, 차이코프스키의 165번째 생일이다. 기자는 학창시절 이 날이면 음악감상 동아리 벗들과 브람스가 더 심오하다는 둥, 차이코프스키가 더 인간심리에 능통하다는 둥 설전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생일이 같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꽃을 피웠을까. 천상에서 행복하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