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영화로 영어보기]알수없는 인생…‘tears in rain’처럼

입력 | 2005-05-05 17:01:00

영화 ‘블레이드 러너’.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서 계속 물고 늘어지는 질문이다. 미래 세계에서 인간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위험한 우주개척지의 노동, 탐사, 전투에 노예로 투입한다. 뛰어난 신체 조건과 더불어 그들을 만든 유전공학자들과 대등한 지능을 가진 복제인간들은 급기야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해, 4년으로 정해진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려 한다. 한편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블레이드 러너 특공대(blade runner unit)’도 가동된다.

다음은 복제인간 배티가 자신을 제거하러 온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살려준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남기는 말이다.

Batty: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중략)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Deckard(독백): I don’t know why he saved my life. (중략) All he wanted were the same answers the rest of us want. Where did I come from? Where am I going? How long have I got?

배티: 난 당신들이 상상하지도 못 할 것들을 봤어. (중략) 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젠 죽을 시간이 왔군.

데커드(독백): 난 그가 왜 나를 살렸는지 모른다. (중략) 그가 찾던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찾고 있는 답이다. 난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예상을 뒤엎는 상황 전개였다.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배티가 데커드를 죽이려다 실족해 자신이 죽거나, 아니면 데커드가 마지막 기지를 발휘해서 배티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선 반대로 배티가 추락하는 데커드를 살려 준다. 왜?

그것은 배티가 자신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 모든 생명의 고귀함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4년이라는 짧은 ‘삶’ 속의 모든 기억과 추억은 마지막 흘러내리는 그의 눈물에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빗물에 흐르는 눈물(like tears in rain)’과 함께 그는 의연히 죽어간다. 미국 영화 팬들이 명대사로 꼽는 배티의 유언 ‘…like tears in rain’. 눈물과 빗물이 섞이듯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선도 모호해진다.

그 자리에서 데커드 역시 인간과 인조인간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한 것임을 깨닫는다. ‘난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라는 데커드의 독백은 곧 배티의 의문이기도 하고 인류의 존재와 함께 지속되어 온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화속도가 아주 빠른 조로(早老)증 환자인 세바스천의 등장은 인간과 인조인간의 차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유통기한 4년의 복제인간과 죽음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인간의 비애가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데커드의 동료인 콧수염 개프. 그림자처럼 왔다 사라지는 그가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도 정곡을 찌른다. “It’s too bad she won’t live. But then again, who does?(그녀가 죽게 되어서 안됐네. 하긴 누군 영원히 사나?)”

주인공 데커드. 팬들 사이에 그를 두고 ‘인조인간이다. 아니다’는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그에 대해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00년이 되어서야 “데커드 역시 인조인간인데 자신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제 그의 모호한 정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론은 지금 내가 당연한 듯 보내는 이 하루는 그 누군가가 간절히 소망했던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것이다.

김태영 외화번역가·홍익대 교수 tae83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