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철학적인 하루/피에르 이브 부르딜 저/269쪽·7500원·사피엔티아
이제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런데 후유증이 너무 심각하다.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앎이 기쁘지 않고 학교생활이 고되다. 게다가 대학별 고사가 강화된다는 소식에 어깨는 더욱 무겁다.
대학에서 치르는 구술면접은 ‘기본소양’과 ‘전공적성’을 살핀다. 그중에서도 기본소양은 학생이 체험한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성찰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감명 깊었던 책’이나 ‘존경하는 인물’ ‘왕따 문제의 해결방법’ 등을 질문한다.
외워서 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답변을 듣고 추가 질문을 해서 얼마든지 사고의 깊이를 헤아려 볼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 따져 보는 습관이 없다면 순발력 있게 좋은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프랑스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필’이 겪은 특별한 하루의 체험담이다. 필은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마음속 질문들에 휩싸인다. ‘거울 속의 나는 누구인가, 그를 보는 나는 누구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인가.’ 생활을 낯설게 여기는 ‘병’이 시작된 것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느낌으로 필은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서기 ‘1000년’은 여행자가 ‘천 배’의 기쁨이라고 할 때의 천과 같은 것일까? 햇수를 세는 것처럼, 기쁨을 하나하나 세었던 걸까?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금기들은 왜 그렇게 많고 또 그것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지는 걸까, 혹은 사전에 실리면 될까?”
넘치는 호기심으로 필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다가 필은 질문 때문에 삶의 의욕을 느끼는 자신을 깨닫는다. 겉으로는 어제와 같으나 새로운 세계를 느끼면서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의심과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 점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청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1일 철학체험’을 할 것이다. 사실 필이 겪은 하루는 우리 학생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신경 쓴다고 핀잔을 주어서는 안 된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가 바로 논술과 구술 평가의 핵심이다. 스스로 사고를 함으로써 학생들이 세계를 활기차게 여기고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학은 이런 학생들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권희정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