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데이’인 5월 2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성삼재에서 농협구례군지부와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등산객들에게 오이를 나줘주며 우리 농산물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역시 등산길엔 상큼한 우리 오이가 최고야.”
2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성삼재. 장엄한 지리산의 기운이 예감되는 이곳에 뜬금없이 오이 예찬론이 무성했다.
‘오이와 함께 건강한 다이어트를’이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40여 명이 농장에서 갓 수확한 오이를 무료로 나눠주자 등산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5월 2일을 ‘오이 데이’로 정해 농협 등이 벌이는 판촉행사”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등산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등산길 갈증과 허기 해소에는 오이가 최고임을 아는 등산 애호가들이 저마다 손을 내밀어 1시간 반 만에 10kg들이 50박스(약 5000개)가 모두 동이 났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농어민단체들이 위기의 농촌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농산물 판촉을 위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쌀 시장 개방에 맞서 우리 쌀 지키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농산물 판촉전=쌀 데이(8월 18일), 삼겹살 데이(3월 3일), 인삼 데이(2월 23일)….
외국산 농산물의 유혹에 솔깃해 있는 도시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해 자치단체와 농·축협은 각종 ‘농축산물 데이’를 만들어 판촉에 나서고 있다.
전남도와 농협 전남지역본부는 쌀 미(米)자를 풀어 쓴 팔십팔(八十八)에서 착안해 8월 18일을 ‘쌀 데이’로 정해 대규모 쌀 판촉행사를 준비 중이다.
축협중앙회는 3이 두 번 겹치는 3월 3일을 삼겹살을 먹는 ‘삼겹살 데이’로 정하고 이날을 전후해 돼지고기 시식회와 할인 판매 행사를 갖고 있다. 또 농·축협은 2월 23일을 ‘23’의 음을 따 ‘인삼 데이’로, 6월 6일은 ‘육(고기)’자가 두 번 들어간다고 해서 ‘고기 먹는 날’로, 11월 11일은 길쭉한 모양의 1이 네 번이나 이어진다고 해서 ‘가래떡 먹는 날’로 정해 다양한 소비 촉진행사를 열고 있다.
박장호(朴章鎬) 농협구례군지부 지도계장은 “3년 전부터 ‘오이 데이’ 행사를 갖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쌀 사랑 운동=수입쌀 시판과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라 급변하는 국내외 쌀 시장 여건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쌀 소비운동도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전남도와 농협전남지역본부는 지난달 19일 전남도청 앞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미선언문’을 채택했다. 기미년 3·1 독립선언문에 착안해 ‘일어날 기(起)’와 ‘쌀 미(米)자’를 써 수입쌀을 이겨내기 위한 농업인들의 의지를 선언문에 담았다.
농협경북지역본부도 지난달 29일 ‘독도사랑 경북농업인 대회’를 열고 ‘독도지킴이 쌀’이란 브랜드를 출시했다. 독도지킴이 쌀은 경북지역 17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일반미 중 최상품을 엄선해 가공한 것으로 전국 600여 매장에서 판매된다.
광주시는 지난달부터 직원 애경사 축·조의금을 쌀 상품권으로 대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직원이나 부서 표창 때 부상으로 주어지는 상금이나 시계 등도 모두 쌀 상품권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학교 급식도 신토불이(身土不二) 바람=강원 원주시 상지대는 학교 예산 6000만 원을 지원해 구내식당 식재료를 우리 농산물로 바꿨다. 이 대학은 원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해 전국 무농약 재배인증 출하 농민들과 계약을 하고 지난달 18일부터 학생식당과 교직원식당에 친환경 농산물만을 공급하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올해 시 전체 예산의 1% 정도인 30억3800만 원을 학교급식 지원사업비로 책정했다. 시는 쌀 채소류 육류 등 42개 품목을 구입해 100개 유치원 및 초중고교에 현물로 지원하고 있다.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제정한 곳은 57개. 이 가운데 18개 자치단체는 지난해부터 예산을 세워 학교에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주민 청구나 발의 등을 통해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인 자치단체도 58개에 이른다.
전태갑(全太甲)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식량자급률이 26.5%에 불과하고 농업총생산액이 연간 30조 원 규모인 국내 농업 현실에서 연간 3조 원 규모인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게 되면 농촌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