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경남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정상득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집에서 정 씨와 그의 누이들이 일본 홋카이도의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왼쪽)이 가져온 강제징용 희생자 정영득 씨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하동=강정훈 기자
“스미마센(미안합니다).”
8일 오후 3시경 경남 하동군 하동읍 정상득(鄭相得·58) 씨 집 안방.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장석경 팀장과 정 씨 집을 방문한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 스님은 정 씨와 그의 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도노히라 스님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관련 단체인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北海道) 포럼’의 공동대표. 한 사찰의 주지이기도 하다.
그는 홋카이도 무로란(室蘭) 시에 있는 고쇼지(光昭寺)에 조선인 희생자 3명의 유골함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하고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내한했다.
일본 민간단체 대표가 자발적으로 징용 한국인 희생자 가족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도노히라 스님은 정 씨 가족에게 1942년 끌려갔다가 숨진 정 씨의 형 영득(英得·당시 15세) 씨의 유골함 사진은 물론 유골함과 같이 있던 자료 복사본을 내놓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영득 씨가 일본제철에서 ‘기계운전공 3급’으로 임명받은 서류도 보여 주었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대표 도노히라 요시히코 씨가 7일 방한해 한국의 유족에게 전달한 유골함. 이 유골함에는 일제 강점 당시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조선인 3명의 유골이 담겨 있다. 연합
그는 “1945년 7월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영득 씨도 당시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득 씨의 여동생 희업(喜業·72) 씨는 “오빠는 일본으로 끌려 간 이후 아무 소식이 없었고, 엄마는 오빠를 기다리면서 내내 화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희업 씨는 또 “당시 18세이던 큰 오빠를 대신해 둘째 오빠가 징용을 갔다”며 “너무 착하고 여자같이 얌전했던 둘째 오빠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생하다 돌아가셨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도노히라 스님이 가져온 서류 가운데는 영득 씨가 사망한 후 해당지역 건강보험조합이 ‘퇴직수당금’ 50엔을 지급한 증명서와 ‘제강부(製鋼部) 직원 일동’의 조위금 30엔, 친목회 명의의 100엔 등이 적힌 종이도 눈에 띄었다. 일본 측이 영득 씨의 사망 사실을 알고도 유족에게는 수십 년 동안 통보하지 않은 것.
스님은 정 씨 가족들에게 “전후 60년이 되도록 일본에 유골을 남겨둔 것과 유족의 아픈 기억과 슬픔에 대해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엎드려 사죄한다”며 “일본 정부와 기업, 저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안겼으며 유골 송환을 포함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도노히라 스님은 이어 “유골 반환 외에 정부와는 별개로 (민간 차원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정 씨 가족은 16일 일본으로 가 영득 씨가 일했던 탄광과 유골이 봉안돼 있는 사찰을 방문할 예정이다.
도노히라 스님은 이날 오후 경남 사천시 사천읍으로 이동해 역시 유골이 고쇼지에 안치돼 있는 희생자 유가족인 구대서(具大書·54) 씨 집을 방문해 사과했다. 그는 9일에는 경남 진해시의 징용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유골 반환문제를 의논한다.
하동·사천=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