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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이강운/2등 전략과 시장의 파이

입력 | 2005-05-09 17:47:00


저가(低價) 화장품 시장의 1, 2위 업체인 ‘미샤’와 ‘더페이스샵’. 후발 주자인 더페이샵이 미샤 스타일을 모방하면서 둘의 관계는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미샤 매장이 있는 곳에 가면 어렵지 않게 더페이스샵 매장을 찾을 수 있다. 미샤가 먼저 시작해 재미를 보면 근처에 더페이스샵 점포가 생겼다.

매장 위치만이 아니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제품, 그런 제품을 싸게 만드는 노하우는 모두 미샤 방식을 참고로 했다. 본사에 상품기획팀을 두고 화장품 생산은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것도 똑 같다.

더페이스샵 정운호 사장은 “저가 시장을 개척한 미샤의 영업 방식과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장은 선두보다 실속 있는 2등이 좋다는 게 정 사장의 생각이다.

두부 시장을 놓고 풀무원과 후발 주자인 두산, CJ 간에 벌어지는 신경전도 이에 못지않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두부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는 풀무원이지만 대기업들의 잇따른 두부 시장 진출에 적잖이 신경 쓰는 모습이다.

CJ가 두부 시장 진출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 풀무원은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신제품을 선보였다. 상대방 제품과 제조 기술을 폄훼하는 듯한 주장이 양쪽에서 나왔다.

시장은 새로운 참가자에게 그리 너그러운 편이 못된다. 대체로 선발 업체의 진입 장벽이 높아 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후발 업체가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그 시장이 장사가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른 업체가 미리 닦아놓은 터에 들어가면 시장 개척 비용이 줄고, 무엇보다도 ‘이걸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주는 리스크를 덜 수 있어 좋다. 사실 요즘처럼 시장이 불투명할 때는 1등보다 2등에게 유리한 점이 더 많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업 초기 2등 전략은 효과적이다.

선두 업체가 보기에는 ‘손 안대고 코풀려는’ 2위 업체가 얄밉다. 대체로 선두 주자는 후발 업체와 ‘비교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전체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는 시각으로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바라보면 어떨까.

고가(高價) 마케팅에 주력하던 태평양도 최근 저가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저가 시장의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경쟁 양상도 지금보다 훨씬 치열해질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승일 상무는 “경쟁으로 마진이 다소 떨어지겠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커질 것”이라며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도 경쟁은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위치에서 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1등이든, 2등이든 혁신 없이는 언제라도 후발주자에게 밀려날 수 있다. 시장에선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고, 이 법칙에 예외는 없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