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과 청력이 나쁜 장애인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다가 주변에서 지켜보던 승객들의 기지로 생명을 구했다.
시각과 청각 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김모(43) 씨는 8일 오후 8시 15분경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종각역 방향의 전동차를 혼자서 기다리다 발을 헛디뎌 선로 위에 떨어졌다.
전동차 0811호가 역 구내로 천천히 들어오던 순간. 모두들 누군가가 선로에 뛰어들어 김 씨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근길에 전동차를 기다리던 시민 100여 명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전동차를 향해 ‘멈추라’는 손짓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영문을 모른 채 승강장에 들어오면서 전동차를 천천히 세우려던 기관사는 직감적으로 큰일이 터졌다고 생각하고 비상제동용 브레이크를 당겼다. 전동차는 ‘끼이익’ 하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면서 김 씨와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가까스로 멈춰 섰다.
마음을 졸이며 승강장 앞에 서 있던 승객들은 김 씨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중 몇 명이 선로로 내려가 김 씨를 부축해 올라왔다.
전동차가 급제동하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 아니냐’며 수군대던 전동차 내 승객들은 사정을 뒤늦게 알고 나서야 환한 표정을 지었다.
김 씨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채 지하철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진복(51) 종로3가역장은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조금만 늦었어도 사고로 이어질 뻔했는데 승객들의 기지와 기관사의 재빠른 대처로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