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북한 핵 위기 때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로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함께 ‘제네바합의’를 만들어냈고, 2차 핵 위기 때는 서울 한복판에서 현장을 지켜본 사람이 바로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다. 지난해 주한 미국대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고 워싱턴으로 돌아 온 그를 만나 북한 핵 독법(讀法)을 들어봤다.
―신의 위치에서 현재 상황을 내려다본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하면 북한의 핵 야망을 포기시킬 수 있을까.
“북한 핵문제는 너무 어려운 도전거리다. 솔직히 한방에 풀 수 있는 마술 총탄(magic bullet)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모든 참가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잘 정리하고 상호 공유해야 협상 타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회담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이 현실화되면 6자회담 구도가 무의미해지는 것 아닌가.
“북한의 핵실험 강행 여부는 점치기 어렵다. 다만 북한은 핵실험이 스스로 고립을 심화시키는 행동임을 잘 알 것이다. 물론 실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은 것과 북한은 사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파키스탄과 달리 북한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주변 강대국이 너무 많다.”
―북한은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를 어긴 전력이 있다. 향후 회담은 어떻게 운용돼야 하나.
“다자의 압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1994년의 북-미 양자회담보다 6자회담이 바람직하다. 제네바합의는 두 가지 이유로 깨졌다. 우선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세워 주기로 합의해 놓고도 나중에 ‘북한에 핵발전소를 지어 줘도 문제가 없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또 건설 기간이 너무 늦춰졌다. 그래서 북한이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에 나섰다. 따라서 이번 2차 위기 때는 북한에 혜택이 빨리 돌아가고 핵 포기 및 검증 절차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제3차 6자회담 때 ‘3개월간 핵동결 후 핵 폐기를 이행하면 에너지 및 경제지원, 수교협상까지 가능하다’는 이른바 ‘6월 제안(June Proposal)’을 내놨다. 북한이 회담장에 복귀한다면 이보다 더 양보할 수 있겠나.
“6월 제안에는 미국의 진지한 자세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내용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의 이런 생각을 듣기 위해서라도 회담장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회담이 재개되기도 전에 미국이 새로운 제안을 낼 수는 없다.”
―북한의 핵개발이 영구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더 얻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한국 중국 러시아는 미국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회담이 재개된 뒤에 북한에 핵 포기의 이득이 뭔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6월 제안의 수정도 할 수 있어야 하며, 펌프의 마중물을 붓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한 뒤에도 북한이 꿈쩍도 않으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에 ‘협상이 실패할 경우 잃게 될 것’을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접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북-일 수교로 배상금도 받고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을 포기한 리비아처럼 석유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맨주먹밖에 없다. 결국 외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선 투명한 제도의 도입 등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그런 변화를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비관적인 사람이 많다.”
―1차 핵 위기와 지금의 차이를 비교해 달라.
“지금의 긴장 수위가 더 높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련국들이 11년 전보다 위기 의식을 덜 느끼고 있다.”
―6자회담이 세 차례 열렸지만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조차 부인했다. 포기하게 해야 할 핵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조차 만들지 못한 셈이다.
“북한은 1994년에도 처음에는 핵물질의 존재를 부인했다. 외교란 낙관주의가 결합된 예술이다. 합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결코 외교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
▼토머스 허버드는…▼
△미국 앨라배마대 졸업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1993년 3월∼1996년 8월)
△필리핀 팔라우 주재 대사
△주한 미국대사(2001년 9월∼2004년 8월)
△법률회사 애킨 검프 선임고문(현)
인터뷰=김승련 워싱턴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