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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크라메르 연출 ‘더 문’ 첫 공연 앞두고 구슬땀

입력 | 2005-05-10 19:38:00

사진제공 경기도 문화의 전당


세계적인 연출가가 만드는 태권도 소재 넌버벌 퍼포먼스로 제작 발표회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더 문(The Moon)-은빛 달의 기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문’은 경기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스노 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러시아 연출가 빅토르 크라메르 씨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 총 1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2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의 첫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더 문’ 연습 현장을 찾았다.

○태권도 유단자 7명 무술단수만 도합 47단

7일 오후 4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일 10시간 이상씩 뛰고 구르고 있다는 설명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오케이, 품세이(품세)! 하나-두-세-네, 다섯-요섯-일곱-요덟. 다시!”

연출가 크라메르 씨와 함께 내한한 벽안의 안무가가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하던 그였지만 이젠 하나부터 여덟까지의 숫자와 ‘다시’ ‘천천히’ ‘빨리’ ‘다함께’ 등의 한국어 몇 마디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연습 중인 장면은 7명의 태권도 용사들이 거인 7명과 맞서 싸우는 ‘거울’ 에피소드. 검은 옷의 거인이 망토를 펼치면 대형 거울이 등장하고 용사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과 ‘창작 품세’로 겨루기를 한다. ‘모든 싸움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철학이 담긴 장면. ‘금강막기’ ‘손날막기’ ‘뒤꾸리기’ 등 태권도 기본동작들이 무용과 만나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표현됐다.

용사들은 빛을 흡수하는 검은 옷을 입은 채 손과 발에만 흰 붕대를 감아 객석에서 보면 마치 손발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강한 비트의 타악 연주에 맞춰 휙휙 돌아가는 손발의 동선(動線)이 허공에 하얗게 원을 그리며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빚어냈다.

이어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꼽히는 ‘축제’ 에피소드의 연습이 시작됐다. 빨간 대나무 막대를 양손에 쥔 20명의 배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교차하며 태권도와 현대무용이 어우러진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이 작품에는 태권도 유단자 7명, 무용가 10명, 배우 4명 등 총 21명이 출연한다. 태권도 유단자들의 무술 단수만 도합 47단.

○태권도가 만들어 내는 환상과 모험, 그리고 상상

‘더 문’은 해가 질 무렵 알에서 태어난 태권도의 기사들이 다음날 해 뜰 무렵까지 겪는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를 13개의 에피소드에 담았다. 연출가 크라메르 씨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고 한국 신화를 많이 읽었다”며 “영웅들이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는 것도 박혁거세 등 한국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들은 세속적인 권력이나 사회 문제를 상징하는 돌덩이와 지붕 모양의 괴물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관능을 상징하는 풀 의상의 여성을 만나기도 한다. 특히 ‘지붕’ 에피소드에서는 두 명의 기사가 60여 개가 넘는 기와(송판)를 연속 동작으로 부수는 화려한 격파 실력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태양이 떠오르는 강가에서의 화려한 점프. 물고기가 수면을 차고 오르듯 기사들은 점점 고난도의 기교를 선보이며 총 21번의 힘찬 점프를 한다.

경기도문화의전당 홍사종 사장은 “기존 태권도 퍼포먼스는 전문 공연물로는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더 문’은 뛰어난 상상력과 볼거리, 그리고 감동을 맛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며 “올해 꾸준히 수정해 내년에 해외 무대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8, 2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031-230-3200

수원=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