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넷째 형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오른팔을 잃었다. 절망 속에서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작곡가 라벨에게 “왼손만을 쓰는 피아니스트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라벨은 왼손만으로 훌륭한 효과를 낳는 협주곡을 작곡해 비트겐슈타인에게 헌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작곡가들의 우정 덕택에 비트겐슈타인은 음악 팬들의 성원 속에서 연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1세기 앞선 1830년대 초, 독일 라이프치히에는 피아니스트 로베르트 슈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연주기술을 향상시키는데 열중한 나머지 손가락을 묶고 연습하다 관절에 경직을 일으켜 오른손이 마비되고 말았다.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가 왜 ‘왼손을 위한’ 작품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엄정한 독일 고전·낭만주의 원칙에 묶여 있던 당시 음악계는 ‘왼손만을 위한 작품’이라는 변칙을 허용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슈만은 대신 작곡가로 진로를 바꿔 성공을 거뒀다.
오른손을 못 쓰게 된 현대 피아니스트로는 미국의 개리 그래프먼을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를 누비며 명성을 구가했던 그는 1980년 갑자기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됐다. ‘암인지 파킨슨병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숙고 끝에 교육가로 전향한 그는 최근까지 커티스 음대 학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의학의 발달로 이 같은 장애를 극복할 수도 있게 됐다. 6월 1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갖는 미국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가 이런 경우다. 1964년 피아니스트로 한창 나이인 37세 때 그의 오른손 손가락이 굽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근육 긴장이상증’이 닥친 것이다. 그는 연주법과 음악 문헌 연구, 지휘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장애를 관리했다. 1982년 그는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프랑크의 ‘교향적 변주곡’을 연주하며 화려하게 양손 피아니스트로 재기했다.
오늘날 피아노 문헌 학자로도 명성을 얻고 있는 플라이셔는 이번 연주회에서 슈베르트의 소나타 B플랫장조 등 양손을 위한 작품 외에 펄 ‘왼손을 위한 연주곡’ 등 왼손을 위해 쓰인 현대 작품들도 소개한다. 음악 팬뿐 아니라, 한계에 부닥쳐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가 될 만한 소식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