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명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구두나 핸드백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의 명품 바람이 불고 있다. 좋은 건물은 문화의 그릇이며 경제의 구심점도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해외에 나가 보니 결국 관광은 건물 구경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에펠탑, 퐁피두센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건물들이 그림엽서의 피사체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4년이면 지을 거라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14년 걸려 지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퐁피두센터는 우리가 짓는 문화시설에 비해 다섯 배의 평당 공사비를 들여 지어졌다는 사실도 강조할 내용이다.
좋지 않은 소식도 있다. 건물을 수입할 수 없으니 건축가를 수입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들을 지명 초청하여 이들만의 현상공모를 진행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제적 지명도의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일수록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홍보효과가 크다는 것은 분명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지명도에 기대어 설계되는 건물이 모두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도가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성장을 막는다는 것이다.
▼외국건축가에 유리한 공모전▼
퐁피두센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국립도서관, 최근 준공된 요코하마 여객선터미널 등의 건물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들 모두 명실상부한 관광명소라는 것이다. 또 난산의 시공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대 후반 무명의 젊은 건축가들이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완성한 건물들이라는 것이다. 하나 더 언급하면 이들 건축가가 지금 한국에서 수입하려는 건축가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설계시장은 기득권 수호와 공무원 편의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용역수행 실적으로 참여를 제한하는 이른바 ‘PQ(Pre-Qualification)’라는 제도가 있다. 비슷한 규모와 성격의 건물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건축가만 해당 건물의 설계에 응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방식을 택하면 사업이 안전하게 마무리되겠지만 젊은 건축가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형성된다.
‘턴키(turnkey)’라고 불리는 입찰 방식이 있다. 설계와 공사를 일괄 입찰해 발주자는 나중에 열쇠를 돌려 사용하기만 하면 되도록 발주하는 방식이다. 외국에서는 턴키를 다리나 댐 공사에 적용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공무원들의 일 진행이 간단하고, 예산 내에 준공할 수 있다고 아무 건물에나 적용한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지금 한국 건축계는 대형 건설사와 대형 설계사무소들의 철옹성이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건물의 완성과는 무관한 일들이다.
건축설계 현상공모의 목표는 ‘가장 유명한 상표’가 아니라 ‘가장 좋은 작품’을 얻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열정에 불타는 실력파 젊은 건축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야 하고 그런 만큼 공정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극장을 짓겠다고 한다.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우리에게 지금 새로운 오페라극장이 필요하냐고도 하고, 왜 그런 외진 곳에 문화시설을 짓느냐고도 했다.
정말 이상한 것은 건축가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아이디어 공모전으로 우선 5명을 선정하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3∼5명을 별도로 지명해 선정된 5명과 다시 경쟁시키겠다고 한다. 예선과 본선을 치르되 지명된 유명 건축가 3∼5명은 곧바로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또 본선은 시공사가 딸려 있는 턴키 방식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명품건축가’의 길 열어줘야▼
지명되는 유명 건축가에 한국의 건축가를 깍두기로 끼워 줄지는 모를 일이다. 문제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명품 건축가들의 무대에 이미 자신들의 아이디어는 사전에 다 공개한 후 북치고 장구 쳐 주는 들러리가 필요하다는 구도처럼 보인다. 지금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건축 국수주의의 궐기가 아니다. 단지 한국의 건축가들, 젊은 건축가들에 대한 역차별을 걷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경쟁이 있어야 실력이 크고 사회가 공정해야 도시가 아름다워진다. 이 도시에 명품 건축이 필요하다면 이 사회는 명품 건축가의 길도 열어 주어야 한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