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지 2개월여 뒤인 12월 21일 당시 경성(서울) 주재 일본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일본 외무성에 보낸 보고서가 메이지(明治) 일왕에게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10일 “‘우치다 보고서’에는 1896년 1월 4일 일본 외무성 정무국이 접수해 외무성 부상과 외상을 거쳐 1월 11일 궁내성 시종장이 일왕에게 상주(上奏)했다는 것이 표시돼 있다”고 밝혔다.
우치다 보고서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됐고 시해 장소도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침전이 아닌 마당이라고 기록된 매우 구체적인 보고서로 이 교수가 올해 초 발굴해 공개했던 자료다. ▶본보 1월 14일자 17면 참조
‘기밀 제51호’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 상단에는 외무성 부상과 외상의 도장 및 사인과 함께 시종장이 쓴 것으로 보이는 ‘上奏’라는 표시와 ‘一月十一日(1월 11일)’이라는 날짜까지 적혀 있다.
일왕에게 보고가 이뤄진 시점은 을미사변 혐의자 45명을 모두 무죄 석방한 히로시마(廣島) 재판 판결인 이른바 ‘조선사건 예심 종결 결정서’가 나오기 불과 9일 전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