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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박명진]‘방송+통신’ 해법 찾기

입력 | 2005-05-12 18:13:00


10여 년째 끌어온 방송-통신의 제도적 융합 문제가 규제기구의 통합을 계기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현재 국무조정실 아래 정보통신부 방송위원회 산업자원부 문화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전담반을 구성해 방송-통신 구조개편을 위한 위원회 설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련부처들 사이의 갈등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 입장 차 때문에 내부적으로 한목소리를 모으기 힘들었던 방송위도 이번에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방송과 통신의 대결구도로 치닫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방송 종사자에게 방송의 기본은 공익성이다. 반면 통신 산업 종사자들에게 미디어는 무엇보다 비즈니스며 산업이다. 이런 기본 인식의 차이에 더해 제도통합으로 있을 수 있는 부처의 생존, 헤게모니 경쟁이 맞물려 출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방송위가 발표한 방안만 해도 수사적으로는 미디어의 공공성, 시민복지의 실현과 함께 산업 활성화를 추구한다고 돼 있지만 통신산업 쪽 입장에서 보면 방송의 공익성을 진작시키기 위한 방안이지 융합에서 기대되는 정보산업 촉진의 접근법이 아니다.

▼부처간 헤게모니 싸움▼

현재 방송위와 정통부 간에 갈등 대상이 되고 있고, 방송-통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융합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인 IP-TV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IP-TV는 인터넷상에서 스트리밍 기술을 이용해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면서, 물리적인 전송수단은 통신을 사용하고 방송과 유사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방송위는 IP-TV를 ‘별정방송’으로 자신의 규제 아래 두려 하고 있고, 정통부는 실시간 방송이 아닌 사용자 주문에 따라 콘텐츠를 제공하는 ‘주문형 인터넷 콘텐츠’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등장한 지 10여 년이 돼 가는 서비스 현상에 대한 정의조차 아직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적 융합이 상당히 진척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제도적 통합의 시도는 늦은 감이 있고, 관련 부처와 이해 당사자 간의 충분한 이해와 교감이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맞는 말이다. 사실 제도적 통합은 1999년 민주당 정부 하에서 방송개혁을 시도했을 때 가닥이 잡혔어야 했을 문제였다. 당시 인터넷방송 서비스는 200여 개가 넘는 상황으로 서비스 영역의 통합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지만 개혁위원회는 시기상조라는 어정쩡한 논리로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다. 부처 간 헤게모니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한 결과 일은 점점 더 어렵게 꼬이기만 한 것이다.

법과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입은 손실은 크다.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인터넷 방송을 비롯해 콘텐츠 영역의 발전은 인터넷 초강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 제도, 정책 등 국가시책이 절대적인 나라에서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었으니 실험적인 시도나 이뤄졌을 뿐 본격적인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물론 통합의 제도적 논의가 표류하는 동안 소득도 있었다. 관련 부처들이 자신의 논리 개발을 위해 융합에 관한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한 덕분에 우수한 전문가를 다수 양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는 단연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그때그때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단기간의 연구에 그쳤을 뿐 여러 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각국의 사례를 빠짐없이 참고하면서 연구한 경우가 별로 없다.

▼중립적 전문가로 추진委 구성을▼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학자들을 들러리로 내세우려 하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중앙정부가 적절한 방법으로 전문가들을 선정해 이들을 브레인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부처와 이해 당사자에게만 맡겨둬선 합의에 이를 것 같지 않은 문제의 해법을 찾는 적절한 방안이 아닐까 한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부처가 방송-통신 융합 문제에 투자해 얻은 최대 소득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명진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언론학 mjinpar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