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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테마 기행/수도권 가볼만한 마애불

입력 | 2005-05-12 19:11:00


깊은 계곡에 은거하기도 하고, 산 정상에서 속세의 땅을 굽어보기도 하고, 마을 어귀에서 친근하게 웃어 보이기도 하는 마애불(磨崖佛). 바위에 새긴 마애불은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불상으로 통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마애석불입상, 서울 북한산에 있는 마애불 등 수도권의 마애불을 소개한다.

▽마애불의 역사와 미학=한반도 최초의 마애불은 온화한 미소로 유명한 국보 84호 서산 마애삼존불(6세기 말∼7세기 초·백제·충남 서산시). 신라와 통일신라의 경우,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경북 경주시 남산의 마애불 불상군이 유명하다.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현존하는 200여 개 중 70% 이상이 고려 것이다. 수도권의 마애불도 대부분 고려시대 것이다.

마애불은 돌을 독립적으로 떼 내 불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그대로 둔 채 불상을 새긴 것이다. 바위와 한 몸이고, 땅과 자연의 일부다. 그래서 처음부터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마애불은 사찰에 있지 않다. 교리에 갇히지 않고 절 밖으로 걸어 나온 불상이다. 따라서 엄숙하거나 지나치게 성스러울 필요가 없다. 옛 사람들이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소박하게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속세를 내려다보는 파주 용미리 마애불=고려 마애불의 대표작은 파주시 용미리 장지산 자락 용암사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용미리 마애불 입상 2구(고려 전기·보물 93호). 전체 높이 17.7m, 얼굴 길이 2.45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목, 얼굴, 갓을 따로 만들어 몸체 위에 붙인 것이 이색적이다. 둥근 갓을 쓴 사람은 남자, 사각 갓을 쓴 사람은 여자로, 부부 사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아이가 없던 고려 13대왕 선종(11세기)의 세 번째 부인이 이 마애불을 만들도록 한 뒤 왕자를 낳았다는 전설도 전한다.

이 마애불은 투박하고 소박하다. 신체의 비례감도 떨어지고 얼굴도 그리 잘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육중하면서 시원시원하다. 편안하고 친근하다. 장지산 아래쪽을 굽어보며 거기 사는 사람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 같다.

▽북한산 사찰의 마애불들=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승가사 뒤편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고려 초·보물 215호)과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 기슭의 삼천사 터 마애불입상(고려 초·보물 657호)이 대표적이다. 두 마애불 모두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얼굴은 온화한 편이며 건장하고 당당한 체구가 두드러진다. 승가사 마애불은 머리 위에 올려놓은 8각형의 모자가 이색적이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의 대웅전 뒤편에도 조선시대 마애불이 있다. 전문가들은 불교적인 마애불이라기보다 민간신앙의 성격이 짙은 마애불로 본다. 자연의 돌과 어울리지 않는 청동 보호각이 좀 어색하지만, 북한산을 오르며 넉넉한 불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