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강제적, 기계적 배분방식으로 졸속 추진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어제 당정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를 유치하지 못한 시도에 다른 기관을 많이 배정해주거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받는 곳에 일종의 보상으로 한전을 보내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고 한다. 한전이 어디로 가야 가장 적절한지를 합리적으로 따지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현재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한전,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규모가 큰 10개 기관은 광역시와 도에 하나씩 배치하고 170개 기관은 10∼15개씩 묶어 시도가 추진하는 혁신도시에 집단 이전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 대상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희망이 서로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강제적인 ‘교통정리’에 나서면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어제 회의에서 이전 계획을 보름 후인 이달 말 확정해 발표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도 문제다. 정부의 일방적 시한(時限)에 맞출 게 아니라 이전의 효율성, 생산성 등을 좀 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12조 원 정도로 추정되는 이전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뚜렷한 방안도 없다. 이전 기관들의 자산을 다 팔아도 3조3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하니 결국 국민의 세금을 더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공기관 이전은 ‘대통령의 철학’을 좇는 정권 차원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대계(大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업무에 가장 효율적이고 수요자 편의에 맞는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 절차를 밟고 국민의 합의를 구해야 한다. 수천, 수만 명의 직원들이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인 만큼 그들의 처지도 헤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수도 이전’ 논란의 재판(再版)이 될 소지가 있다.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이전은 결코 무리수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