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유성룡 지음·김흥식 옮김/248쪽·8700원·서해문집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뜨겁던 여론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로 끓어오르더니 이제는 온통 북핵 문제로 요란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두더지 잡기처럼 때마다 울분을 토하는 것도 마땅찮다.
이제는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한 때라는 의미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바로 논리요, 논술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처럼 역사를 살펴보고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 속에서 우리가 찾는 해법을 얻을 수 있다. 풍부한 배경 지식과 적절한 사례는 논리나 논술의 큰 밑천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책을 봐야 할 이유다.
1592년 4월 13일, 전쟁이 시작된 이래 왜적들은 불과 20일 만에 서울을 빼앗는다. 선조 임금은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몽진을 한다. 오죽하면 조선이 왜의 앞잡이가 되어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냐는 명나라의 의심을 샀을까?
큰 나라에 의지해 나라를 되찾겠다고 했지만 강대국이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힘없는 나라의 왕과 재상이 겪는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물며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야 말할 필요가 없다. 7년여에 걸친 전쟁의 비참함을 책은 이렇게 전한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살아 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라고.
이 모든 참상을 유성룡은 빼놓지 않고 적는다. ‘징비(懲毖)’라는 책의 제목이 뜻하듯 지난날의 실패를 교훈으로 하여 삼가고 조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우리의 수모와 아픔을 적은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된 원인을 따지고 밝혀서 훗날의 경계로 삼은 데 있다. 장수의 기용에서 진지 구축에 따른 축성술, 전술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의병활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임진왜란의 공과를 하나하나 논하고 있다.
유성룡은 말한다. “앞사람의 잘못을 뒷사람이 고칠 줄 모르고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요행에 기대는 것일 뿐, 참으로 위험하다”고.
과거를 잊고,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상황이 어렵고 정세가 급변할수록 우리는 선인들의 삶과 발자취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고쳐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문재용 오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