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달리며 희망 나눠요”28명의 발달 장애인에게 직장을 제공한 기타 부품생산 업체 ㈜진호의 최병채 사장(왼쪽). 그는 “발달 장애인들이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 사장은 14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펼쳐진 ‘중소기업사랑 마라톤대회’에 회사 직원인 ‘말아톤’ 배형진 씨와 함께 참가해 5km를 같이 뛰었다. 안철민 기자
“안녕하세요.”
11일 경기 하남시에 있는 기타 부품 생산업체 ㈜진호.
최병채(崔秉寀·50) 사장이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직원들의 손놀림은 아주 빨랐다. 기타 부품인 머신 헤드(줄감개)를 능숙하게 조립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숙련공이었다.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던 김형철(23) 씨에게 말을 붙여봤다. “이곳에서 일한 지 2년 됐고요. 아주 좋아요. 돈도 벌 수 있고…. 앞으로도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이들은 자폐 증상을 갖고 있는 발달 장애인이다. 화제를 모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22) 씨도 이 회사에서 근무한다.
기타 부품의 줄감개를 만드는 ㈜진호는 연간 매출액이 60억 원 정도로 제품의 70%를 수출하는 회사. 특이한 건 직원 68명 가운데 28명이 발달 장애인이다. 신체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업체들은 많지만 발달 장애인을 이처럼 대규모로 고용하는 회사는 드물다.
최 사장이 발달 장애인에 관심을 가진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하루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자폐아가 엄마와 같이 탔어요. 자폐가 심한 그 아이가 엄마를 물어뜯고 난폭한 행동을 하더군요. 엄마의 모습이 아주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 아이들을 사회로 한번 끌어내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 사장은 2001년부터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정서장애인 특수학교인 한국육영학교 졸업생들을 회사에 근무시켰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단다.
처음엔 14명을 고용했는데 지금은 28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육영학교 교사와 ㈜진호 직원들은 회사에서 3개월간 집중 교육을 시킨 뒤 정식 업무에 투입한다.
업무는 단순하다. 발달 장애인들은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조립을 하고 있다. 최 사장은 “모두 20대지만 수준은 4, 5세 정도”라며 “아무래도 단순 업무 외에 위험한 일은 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샘플 기업’ 되고 싶다
최 사장은 “장애인들을 고용하고 처음 2년간은 아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비장애인들도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쉽지 않은데 발달 장애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힘드니까 소리도 지르고 일 하다가 나가기도 하고 그랬죠. 하지만 이젠 다들 적응해서 일 잘합니다.”
이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매시간 10분씩의 휴식시간이 있다. 출퇴근은 셔틀버스로 한다. 월급은 70만∼85만 원을 받는다. 최 사장은 “아이가 벌어서 전체 가족들이 먹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장애인들에게 주는 월급의 절반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보조해 준다.
“두 달에 한번씩 부모들이 와서 자식들이 일하는 모습을 봅니다. 부모들이 ‘이곳에서 일하면서 치료도 되고 가정에도 평화가 왔다’고 얘기할 때 정말 뿌듯합디다. 사실 중국조립회사에 같은 일을 맡기면 더 싸게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커나가는 걸 보는 게 큰 낙(樂)입니다.”
최 사장의 소망은 발달 장애인을 100명 고용해 대표적인 장애인 고용 성공 사례 기업이 되는 것이다.
○ ‘말아톤’과의 인연
기자가 이 회사를 방문한 날은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씨가 없었다. 최 사장은 “한달 휴가를 보냈다”고 했다.
배 씨는 영화성공과 함께 휴먼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여기 저기 온갖 행사에 불려다니느라 몹시 피곤한 상태라고 한다.
지난달 최 사장은 힘들어하는 배 씨와 면담을 가졌다.
“형진아. 마라톤 하고 싶니, 아니면 일을 하고 싶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전 일하고 싶어요. 그래도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마라톤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최 사장은 배 씨에게 지난달 20일부터 한달 휴가를 줬다. 휴가가 끝나면 배 씨의 뜻대로 오후에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배 씨는 한국육영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사했다. “형진이는 처음부터 일을 아주 잘 했어요. 점심 먹고는 늘 마당에서 뜀박질 하더군요.”
최 사장은 “형진이 덕분에 청와대 가서 대통령도 만나게 됐지만 부담감은 더 커졌다”며 “내가 평생 사명감을 갖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가 갖는 ‘사명감’은 발달 장애인들을 사회로 끌어내는 일이다.
회사를 떠나면서 이들이 만든 부품으로 조립한 기타의 선율이 아주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남=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