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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차수]달라이 라마와 동북아 균형자론

입력 | 2005-05-15 18:24:00


15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국의 사찰에는 수많은 불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절을 찾은 이들은 연등을 내걸고 가족의 평안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다.

문화관광부의 종교 인구 통계에 따르면 불교가 26.3%로 신도가 가장 많고 개신교 18.6%, 천주교 7.0% 순이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는 교세에 비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향력 있는 스님들은 주로 산중에 묻혀 자기 수양에 몰두하고 신도들은 복을 비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계의 소극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예가 바로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다. 불교계는 몇 년 전부터 티베트의 정치적 종교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해 왔으나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불교계의 숙원 중 하나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무산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정부에 대고 큰소리 한번 안 지르고 있다.

1959년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수많은 세계인에게 지혜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교 교리뿐 아니라 과학과 종교, 삶의 지혜 등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한다.

특히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전 세계에 관용과 자비의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런 평화주의운동은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 줬다. 불교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달라이 라마만큼 기여한 사람도 드물다.

국내에서도 ‘용서’ ‘달라이 라마님, 화날 때 어떻게 하세요?’ 등 그의 저서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을 읽은 많은 독자는 그를 직접 만나 육성을 듣고 싶어 한다. 불교계가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도 3월 일본 방문 중 가진 인터뷰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한국인들의 간절한 바람에 감사한다”며 방한하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중국이 달라이 라마의 외국 방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일본을 10차례나 방문했고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찾았다. 이들 나라도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중국 정부의 뜻을 잘 알면서도 ‘정교(政敎)분리’를 내세워 그의 방문을 허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내세운 ‘동북아 균형자론’이 떠올랐다. 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더욱이 달라이 라마는 얼마 전 티베트의 전통이 유지된다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의 방한을 허용해도 될 만한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도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우리를 입지와 역할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는 ‘동북아 균형자론’의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