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하루 전인 14일부터 전국 초중고교와 교원단체는 각종 기념행사를 가졌지만 교사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치 않았다.
촌지 수수 단속 직원이 교사의 소지품 검사 운운하며 교무실까지 들어오고 야쿠르트 배달 아줌마를 가장해 학교와 교사의 동태를 살피는 등 스승 존경의 날이 아니라 자존심을 꺾는 날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윤종건·尹鍾健)는 15일 성명을 내고 “일부 교육청과 부패방지위원회가 촌지거부 서약서를 강요하거나 교사 소지품 검사, 함정 단속 등 과잉 단속을 한 것은 교권침해 수준을 넘은 인권침해로 자괴감과 분노를 느낀다”며 해당 교육감의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다. 14일 인천 D고에서는 교무실로 시교육청 감사관실 직원이 들이닥쳐 2시간 동안 교사 소지품을 검사한다며 캐비닛을 열어 보거나 교사 책상 주변을 훑어본 뒤 서류 검사를 하기도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가 교사들이 “범죄자 취급하느냐”고 항의하자 학교 단위 서명으로 대신했다.
교총 한재갑(韓載甲) 대변인은 “단속 직원이 학부모를 가장해 빵이 든 쇼핑백을 억지로 주고 가 나중에 보니 상품권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때문에 교사와 학부모에게 모두 부담이 되는 스승의 날을 지금처럼 계속 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국공사립초중고교교장협의회는 초중고교 344개교를 대상으로 스승의 날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58%의 학교에서 “아예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응답했다고 15일 밝혔다.
현재대로 5월 15일에 계속 실시하거나 학년이 끝나는 2월 말로 옮기자는 방안은 각각 21%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교사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각급 학교별로 교원들의 토론을 통해 통일된 의견을 조사한 것이다.
서울 B고의 한 교사는 “교사의 사기를 꺾지 말고 차라리 스승의 날을 폐지해 묵묵히 교단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게 해 달라”고 말했다.
한 교사는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스승의 날만 되면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이 후회된다”는 글을 올렸다.
교육공동체시민연합 이상진(李相珍·서울 대영고 교장) 공동회장은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교사 의견이 많은 것은 스승을 공경하는 날이 아니라 되레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회 풍토에 교사들이 얼마나 좌절감을 느끼는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14일 스승의 날 본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기념일을 학년이 끝나는 2월 말로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부모회는 “스승의 날이 교사에게 자존심 상하고 학부모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날로 왜곡됐다”며 “존경과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의미를 되찾기 위해 학년이 끝나는 2월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1998년부터 2월로 옮기기 위한 청원운동을 벌여 왔는데 앞으로 학부모 서명 명단과 제안서를 교육인적자원부에 제출하고, 행정자치부에는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바꾸도록 제안할 방침이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