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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촌지 거부 서약서’까지 받아야 하나

입력 | 2005-05-15 21:25:00


광주시교육청이 스승의 날(5월 15일)을 앞두고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교사들에게 강요해 물의를 빚었다. 교육행정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교사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스승의 날이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어이없는 일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일부 교육청은 올해도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 현장을 잡는다며 암행(暗行) 감찰반을 운영했다. 이들은 학교 주변에 상주하며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는 것을 일일이 감시했다. 일선 학교는 ‘교사에게 촌지를 주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학생 손에 들려 학부모에게 보내기도 했다. 스승의 날에 요(要)주의 대상이 되고, 제자의 눈에 ‘촌지 받는 교사’로 비치게 된 교사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러니 교사들이 차라리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까지 하는 것이다.

촌지 수수(授受)가 근절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잠재적 범죄자 다루듯 하는 이런 방식은 피해야 한다. 교사들의 의욕을 꺾고 교직에 대한 회의만 불러올 뿐이다. 그 결과는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 교육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직은 다른 공직과 성격이 다르다. 사람을 가르쳐 성숙된 인간으로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처음 교직을 선택할 때는 보람과 사명감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자존심은 존중돼야 한다. 교사의 직업의식이 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교사들이 여전히 긍지를 갖고 교단에 서고 있음도 간과되어선 안 된다. 교사의 문제는 교직의 특수성에 맞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스승의 날을 없애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교육현장의 촌지 수수는 신뢰의 문제다. 자녀를 맡긴 학부모들이 불안한 마음에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가 협의를 통해 촌지를 없앤 학교에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거리감이 크게 줄었다는 사례도 있다. 촌지를 막기 위한 감시나 전시적인 행정보다는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스승의 날의 본뜻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