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문 작 '남겨진 사람'(2004년)
화가 남궁문(49·사진)은 서울 태릉의 아파트에 혼자 산다. 어쩌다 한번, 저녁 약속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밥 먹고 혼자 잠자고 혼자 장보고 산책한다. 그리고 낮에는 혼자 그림을 그린다.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말했다. “왜 혼자가 습관이 되었느냐”고 묻자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외로울 적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과 단절해 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통수단은 컴퓨터. 매일 오후 11시경 잠자리에 들어 오전 3시경 일어나는 그는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과 그림을 올린다.
혼자 있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닌, 하지만 궁극적으로 혼자인 현대인의 삶, 그것이 바로 화가 남궁문의 일상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일기처럼 펼쳐 보인 ‘외출금지(No Exit)’전을 20일∼6월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연다. 그의 ‘외출금지’는 타인의 외압에 의한 금지가 아닌 스스로에게 내린 명령이다. 작가는 스스로 외부와의 단절을 감행하며 자신의 내부로 침잠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라 했던가. 이번에 선보이는 150점은 남궁문이라는 특정 개인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것들. 그의 내면은 외로워 못살겠다고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지만, 이내 그 사람들로부터 빠져나와 스스로에게 ‘외출금지’를 명령한 우리 자신의 내면과 닿아있다. 남궁문 회화의 힘은 바로 그 공감의 힘에 있다.
어느 덧 미술이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린 요즘, 그의 작품들은 미술이나 그림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마치 일기를 쓰듯 생활을 드로잉 했다. 온통 붉은색 화면에 나른한 선만으로 표현된 ‘외출에서 돌아와’는 지금 막 밖에서 돌아 와 입었던 옷을 벽에 걸고 양말을 벗어 팽개치고는 방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인물의 윤곽만을 그린 작품. 사회인이기 때문에 피치 못하게 ‘수행’해야 하는 외출에서 돌아와 소통이 힘들었던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낙담한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맑은 날 Ⅱ’도 밖은 화창하게 맑은데,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어 그저 이부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며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자신에게 외출금지를 명하지만, 결코 현실에서 떠나지 못한다.
인물들을 얇은 종잇장처럼 축 늘어지거나 간단한 선 몇 개의 형상만으로 그리면서도 그가 화면 한 쪽에 집착하듯 담아내는 달력, 시계, 팔에 매단 가느다란 수혈 튜브 같은 것들은 바로 세상이나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소통의 끈이다.
남궁문은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벽화를 공부했으며 그동안 국내외에서 8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시를 기획한 일민미술관 김희령 디렉터는 “그의 그림을 보다보면, ‘그래 나도 이럴 때가 있지, 나도 이런 생각을 했을 때가 있지’ 하는 공감이 일어난다”며 “공감이 어려운 현대미술에서 남궁문의 그림은 미술이 다름아닌 우리 내면의 기록이며 상처를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소개했다. 02-2020-2069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