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건 늘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경진대회인 인텔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자신을 ‘과학마니아’라고 소개했다. 사진 제공 인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아이디어다
“여러분이 다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8∼13일 열린 인텔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SEF) 개회식에서 크렉 바렛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아이디어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며 참가 학생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 대회는 미국 과학진흥 비영리재단 ‘사이언스 서비스’가 주관하고 인텔이 후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경진대회로 45개국에서 출전한 중고교생 1447명(미국 919명)이 물리 화학 컴퓨터 등 14개 부문에서 기량을 겨뤘다.
한국은 배경윤(17·창동고 2년) 정현호(18·광남고 3년) 김동호(18·부산과학고 3년)군과 오한기(18·대전과학고 3년) 박청하(18·한국과학기술원 1년) 민수빈(18·전남과학고 3년) 양 등 6명이 참가했다.
○“성적을 위한 과학은 가라” 과학 즐기는 영재들
출품작 전시장에는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자녀와 함께 나온 학부모, 학생, 노인들까지 다양한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참가 학생들은 부스를 설치하고 관람객에게 연구의 동기나 응용 분야 등에 대해 설명했고, 관람객도 진지하게 질문하거나 “정말 근사하다”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기도 했다.
지구과학 부문에 출품한 에이미 마콰르트(17·아이오와주 메디아폴리스고 2년) 양은 “상에는 욕심이 없다”며 “내 연구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새 작품도 구경하기 위해 참가했다”고 말했다.
○산-학-연 손잡고 탐구심 자극한다
대부분의 미국 출전 학생은 학교와 대학, 지역 연구소 등에서 교육을 받았고 교육기관들은 이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근처의 유해먼지가 수질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한 데릴 화이트(18·인디애나주 컴파나고 3년) 군은 모든 실험과 연구를 학교에서 준비했다.
그는 “학교수업 보고서로 낸 것인데 선생님이 ‘더 깊이 연구해 보자’고 제안해 큰 대회까지 오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자크 스틱랜드(16·켄터키주 크리스천고 1년) 군은 “미생물 연구를 하면서 궁금증은 인근 대학의 생물학 교수에게 e메일로 문의했다”며 “전혀 안면이 없었지만 친절히 가르쳐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방학 때 미시간대학의 고교생 과학 프로그램인 ‘DNA 코스’에서 강의를 듣고 실험도 했는데 정말 신기했다”며 “다음 방학에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크의 어머니이자 생물교사인 데보라 스틱랜드 씨는 “깊이 있는 공부를 원하면 지역 대학 프로그램을 추천하거나 전문가를 연결해준다”며 “학생의 과학적 탐구심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현호 군은 “참가자 대부분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는 게 제일 부러웠다”고 말했다.
○기업의 과학 육성… 발전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 적극 지원
인텔 프로그램 매니저 바바라 카르멘 씨는 “과학 인재의 창의성을 북돋워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 대회의 목적”이라며 “채점 기준도 현재의 기술이나 완성도보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와 과학적 사고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교수로 동행한 한국과학기술원 배두환(전산학과) 교수는 “과학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물론 기업까지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점이 부럽다”고 말했다.
피닉스=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인텔 국제과학기술대회 본상-특별상 받은 박청하-민수빈▼
KAIST 박청하(왼쪽), 전남과학고 민수빈양.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 출품작을 보고 ‘연구가 멋있다’고 칭찬할 때는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세계 영재들의 수준을 보고 분발해야겠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미생물학 부문에서 ‘토양곰팡이를 이용한 배 흑성병의 생물학적 방제에 관한 연구’로 본상 2등과 미국 식물병리학회 특별상 4등을 받은 박청하 양과 민수빈 양.
피닉스에서 만나 본 이들은 전남과학고 동창으로 같은 주제로 대한민국 과학기술경진대회에서 3등을 수상했다. 박 양은 2학년을 마치고 올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다.
박 양은 “고교가 배 과수원에 둘러싸여 있는데 수시로 농약을 뿌리는 걸 보고 천연 농약을 연구하게 됐다”며 “1, 2학년 내내 둘이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70개가 넘는 곰팡이균을 실험했다”고 말했다.
민 양은 “남이 학교 공부하는 시간에 실험하면서 내신성적이 떨어져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했다”며 “실험을 같이 했던 2명은 중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두 학생은 “세계대회를 보고 지적 호기심이 높아졌다”며 “계속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피닉스=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