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000개를 인출함에 따라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용인할 것인지, 또는 강제로 저지할 것인지를 놓고 머지않아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형편이다.
북핵과 관련해 여러 해법이 거론되고 있지만 마이클 아마코스트 전 미국 국무부 차관이 12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선택은 네 가지 중 하나가 될 것” 이라고 밝힌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그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NSC)의 요직과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등을 두루 거친 전략통이기 때문이다.
그는 ①영변 핵시설 폭격 ②북한체제 전복 시도 ③충분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핵 포기 설득 협상 ④북한의 핵 보유 묵인 중의 하나가 해법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 이 중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아 온 한국인들은 사지선택형 문제에 이력이 나 있지만 선택이 간단치 않다. 그렇다고 연필을 굴려 답을 찍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 한반도의 변란이 우려되는 ①, ②를 제외하자. 현 단계에선 ③안이 ‘평화적, 외교적 해결’에 가장 적합해 보이지만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전혀 없다면 협상은 무용(無用)하다. ④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어긋나고 국제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 어느 안도 쉽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6월 제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중유 제공과 불가침 및 다자안보 보장, 북-미 국교정상화 등의 조치를 취하는 다단계 해결안을 제시했고 북한은 “미국 안이 건설적”이라고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이를 토대로 해법이 모색될 가능성이 높다. 다단계 해결안 중 대북 다자안보 보장 및 북-미 수교는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처하는 군사동맹이 기초인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와 임무도 바뀔 수밖에 없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남북한 모두의 우방이 되는, 이런 해법에 대한 국민의 이해는 아직 충분치 않은 상태다.
반면 북핵을 용인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더욱 의존하거나 자위적 차원에서 핵개발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재래식 군비만으로는 대북 억지력 확보가 불가능한 탓이다. 북한의 핵보유가 일본 대만을 자극해 동북아의 핵무장 도미노를 초래할 개연성이 큰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북핵 문제 해결에 드는 경제적 부담과 외교 안보적 영향 등을 고려해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와 북핵 용인은 물론 평화적 해결도 우리에겐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북한이 스스로 단념하지 않는 한 공짜로 북핵 문제를 풀 묘수는 없다.
해법이 꼭 네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부는 ‘평화적 해결’과 ‘북핵 절대 불용’이라는 모순되는 원칙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창의적 해결안을 찾아 국민과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