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MK픽처스
가족영화란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을 만한 영화, 또는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면 가족영화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영화일 것이다. 최근 개봉된 한국영화에서 찾자면 아예 가족을 제목으로 한 ‘가족’과 500만 명이 넘게 본 ‘말아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엔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없지 않고, 가족영화라 부르기에 적절한 ‘말아톤’도 처음부터 가족영화를 표방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안녕 형아’는 이런 면에서 하나의 도전이다. 제작사 MK픽처스가 ‘가족영화를 하나의 대표 장르로 삼아 꾸준히 만들겠다’고 천명한 이후 내놓는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MK픽처스 측은 미국 디즈니사가 꾸준히 만들어 온 가족영화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안녕 형아’는 또 다른 도전이다. 디즈니의 가족영화가 주로 결혼(또는 이혼)을 소재로 부모와 자녀 간의 화해와 가족의 결속을 이끌어냈다면, 이 영화는 가족 구성원의 불치병, 즉 죽음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안녕 형아’는 도전의 성공 여부를 떠나 도전 자체로도 주목 받을 만한 작품이다. 가족용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아빠들이 ‘철판볶음용 스테인리스 주걱으로 달걀을 돌리고 던진 뒤 절반으로 자르기’ ‘컵과 그릇들을 쓰러뜨리지 않고 밑의 식탁보를 한번에 당겨서 빼내기’ 등의 힘든 과제를 수행하지는 못해도 가족들의 눈물어린 포옹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9세 한이(박지빈)에게는 열두 살 먹은 형, 한별(서대한)이 있다. 한이는 착하기만 한 형을 형으로 대접하지는 않고 골탕을 먹이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한별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 급히 뇌수술을 받고 소아암 병동에 입원한다. 엄마(배종옥)는 형을 간병하느라 한이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아빠(박원상)는 ‘형을 괴롭힐 때마다 형이 기록하도록 수첩을 주겠다’며 한이를 윽박지른다. 한이는 형이 친동생인 자기보다 형과 같은 병을 앓는 소아암 병동의 욱이(최우혁)를 더 동생같이 아끼는 것만 같다. 한이의 고민은 시작된다.
TV의 ‘병원 24시’ 같은 다큐멘터리가 으레 그러하듯 중병을 앓는 자녀가 있는 가족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안녕 형아’는 그런 조건반사적인 눈물빼기를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초반 10여 분이 지날 즈음 엄마가 “아들이 눈이 멀도록(뇌종양이 시신경을 악화시켜 시력을 떨어뜨린다) 잘난 엄마는 뭐하고 있었던 거야”라며 자책의 눈물을 흘린 뒤부터 카메라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쑥 빠져나와 한이의 정신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한이는 욱이와의 모험, 잘난 척하는 급우 준태와의 에피소드 등을 겪으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그것은 아홉 살 아이에게는 아픈 경험이다. 그러나 자신과 가까운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들을 위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소년이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지불해야 할 수업료이기도 하다.
결국 눈물을 훔치기 위해 준비한 휴지는 몇 번 써보지도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아쉽지만 가족영화라는 생각을 지운다면 ‘안녕 형아’는 한 편의 성장영화로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디즈니를 의식한 듯, 산에서 원시인처럼 행동하는 ‘타잔아저씨’의 등장을 판타지로 처리한 것은 극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튄다. 배종옥과 오지혜(욱이 엄마)가 병원 화장실에서 세면대에 물을 채워놓고 얼굴을 담근 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만하다. 27일 개봉. 전체관람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