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인류의 시선은 바티칸이라는 지구상의 가장 작은 나라와 그곳에서 한 노인이 운명하여 장례를 치르는 광경, 또 265대 교황이 뽑혀 취임하는 장면에 쏠렸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문장(紋章) 아래편에 조가비 한 개를 그려 넣었다.
이 조가비는 그가 각별히 경애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유래한다. 사도 바울로 다음가는 사상가인 그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그가 바닷가를 거니는데 어린아이 한 명이 모래밭에 구멍을 파고는 조가비로 바닷물을 퍼다 붓고 있었다. 그가 뭐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바닷물을 퍼서 구멍에 채울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 조그만 조가비로 무슨 수로 바닷물을 다 채우느냐”고 면박하자 아이는 “당신의 그 작은 머리에 무슨 수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 집어넣으려고 하세요?”라고 당돌히 대꾸하고는 사라졌다는 것. 새 교황도 이 지성적 겸허함을 배우고 싶어하는 듯하다.
서구 문화의 두 기둥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두 문화가 합류하는 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고중세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저작을 낸 그는 ‘고백록’을 자기 대표작으로 간주했다.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인 이유는 진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을 형광등의 밝고도 차가운 빛을 내는 지성이라고 한다면 그의 책에서는 시뻘건 불꽃으로 넘실거리면서 삶을 송두리째 삼키는 ‘마음의 논리’를 접할 수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인간 천성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고 단정하고 그 진리를 ‘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소이다”고 실토한다. 당시 유행하던 온갖 철학과 종교를 방랑한 끝에 나사렛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인격신에게서 그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소이다”라고 선언한 뒤 44년간 성직자, 영성가, 사상가 및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남김없이 이 언약을 실천한다.
여생을 두고 끊임없이 되뇌던 그의 후회,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던 그의 유언에서 진리에 대한 열정을 독자는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으로 유일신 사상에 이르기도 힘겨운 인류에게 유일신 하느님이 삼위일체로 존재한다는 놀라운 가르침을 새로 내렸다. 그리스도인들은 스무 세기를 궁리했지만 아직도 그 교리가 무슨 뜻인지 속 시원히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 문명이 시들어 가던 구역질나는 냄새를 맡았다. 그 제국의 붕괴와 몰락은 서구 문명의 몰락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위기감을 대변해 주고 있기도 하다.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혼자 남은 초강대국이 그 군사 횡포로 세계 평화를 파괴하지나 않을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두 세계에서 파생한 광신적 근본주의가 인류의 폭력적 종말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안타까워하는 지성인들에게 ‘고백록’은 그의 ‘신국론’과 더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벗이다.
성염 주교황청 대사·前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