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원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보유한 갑부. 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 평범했다.
20일 열린 수원 삼성-첼시의 경기. VIP 소개 명단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경기장 안팎은 ‘보이지 않는’ VIP 한 명의 경호를 위해 초긴장 상태였다.
극비리에 경기장을 찾은 그는 다름 아닌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38) 씨.
은밀한 경비 속에서 어렵게 만나 본 그는 금발의 부인과 함께였고 평범한 남색 재킷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기자가 “즈드라스트 비체(안녕하세요)”라고 러시아어로 인사하자 그는 모국어를 듣고 반가운 듯 “즈드라스트 비체”라고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영어로 기자의 소개를 하자 그는 머리를 기울이며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경호원이 제지했다.
영국인 경호원은 “구단주는 단 한번도 인터뷰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구단주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항상 러시아어 통역을 데리고 다니며 지금도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둘러댔다.
그는 경기 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선수 격려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설 것을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하프타임 때는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부부와 10여 분간 환담을 나누었으나 경기 내내 말수가 적었다.
끝까지 경기를 지켜본 그는 또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원=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