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실상’을 발견한다.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밝힌 민주주의의 근본은 ‘조건의 평등’에 대한 열망이다. 조건의 평등은 근대 사회혁명의 이념적 원리이자 실질적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평등에 대한 열망은 위험성과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노예 상태라는 두 가지의 위험을 지닌다고 한다. ‘조건의 평등’은 사회 구성원을 결합하는 전통, 권위, 위계질서를 해체시킴으로써 무질서와 ‘개인주의’를 낳는다. 그러나 고립된 개인들은 이내 두려움에 싸여 대중(大衆)을 권위의 주체로 삼고 그 막강한 권위에 순종한다.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형태의 전제(專制)정치가 등장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개인주의는 또 세속적 쾌락에 집착하는 물질주의를 확산시킨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이러한 ‘운명’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토크빌은 평등의 원리가 노예 상태와 자유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는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한다. 다수의 횡포를 막는 사법부, 지방자치, 선거 등은 건전한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제도와 법률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습(mores)이다. 자발적인 결사(結社), 자유로운 언론, 물질주의를 경계하는 종교, 절제를 가르치는 교육, 전통을 계승하는 가정은 급진적 평등의 폐해를 막는 보루라는 것이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등 다양한 기념일로 가득하다. 우연이라면 우연이다. 그러나 토크빌의 관점에서 보면 가정, 교육, 종교, 민주주의는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사랑과 자기희생을 가르치는 가정, 도덕적 권위를 세우는 교육, 물질주의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종교는 ‘조건의 평등’에 대한 열망이 낳는 위험을 줄인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관습’이라는 ‘평등의 조건’을 되새겨봄 직하다.
유홍림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hongli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