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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남형두]한류 지적재산권 적극 챙기자

입력 | 2005-05-23 09:09:00


몇 해 전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아 판소리 대본을 영어로 번역한 한 외국인이 유럽지역에 판소리 다섯 마당의 영어 번역본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해 놓은 모양이다. 우리 정부가 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번역물에 대한 저작권을 챙기지 않은 틈을 이용한 것. 이를 모르고 유럽에 판소리 공연을 하러간 우리 소리꾼들은 그 외국인에게 영어 자막 사용료를 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연차총회에서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라운드를 논의할 때가 되었다면서 뉴라운드의 의제로 ‘지적재산권(IP)’을 들었다.

미국이 농산물에 이어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새로운 의제로 제안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항공기와 군수산업을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에 있어서 일본 중국 한국 등에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인 미국에서 그간 농업과 함께 지적재산권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은 지적재산권에 관한 한 세계를 미국 주도하에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류(韓流) 열풍으로 대변되는 한국 문화상품은 동아시아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서 미국 위주의 세계시장 구도를 깨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지역에서만은 한류를 앞세운 각종 지적재산권에 있어서 미국과 같은 지위, 즉 공급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지적재산권에 관한 한 ‘수요자적 지위’와 ‘공급자적 지위’를 모두 갖는 이중적 모습을 띠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한류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화 등 지적재산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런 주장에 대해 “결과적으로 미국만 좋은 일 시키게 되므로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아울러 나온다.

물론 적극적으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다가 미국으로부터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지하자원 등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길은 과거 가공무역을 통한 수출이었다. 그러나 제조업도 인건비 상승으로 인하여 중국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활로는 정부가 향후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지목하고 있는 지적재산권과 정보기술(IT)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지적재산권을 우리의 ‘미래산업’으로 보는 이상 이를 적극 보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FM 라디오의 황금시간대를 점거했던 많은 팝송프로그램이 우리 가요에 밀려 소수의 마니아들과 함께 심야시간대로 쫓겨 간 지 오래됐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방화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같이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풍부한 우리 문화는 지적재산권의 충실한 콘텐츠가 되고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문화콘텐츠를 날라주는 수단인 IT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잘만 하면, 현대자동차 150만 대 수출로 인한 이익과 그 판권수입이 비슷했다고 하는 영화 ‘쥐라기공원’ 같은 대작이 우리에게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판소리 영역본처럼 스스로 챙기지 않고 빼앗기다 보면, 인디언 소재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를 제작한 디즈니사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라이언킹’을 뮤지컬화한 브로드웨이가 우리의 별주부전이나 콩쥐팥쥐를 우리보다 앞서 세계무대에 올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남형두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저작권심의조정위원